짓는다는 것
- 치매행致梅行 · 158
洪 海 里
반달 하나 하늘가에 심어 놓고
눈을 감은 채 바라다봅니다
먼 영원을 돌아 달이 다 익어
굴러갈 때가 되면
옷 짓고 밥 짓고 집 지어
네 마음 두루두루 가득하거라
내 눈물 지어 네 연못에 가득 차면
물길을 내 흘러가게 하리라
사랑이란 눈물로 씻은
바람과 햇빛 같은 것 아니겠느냐
아내여, 네 웃음에 나도 따라 짓지만
어찌하여 그것이 이리도 차고 아픈가.
<감상>
* 시를 보면서 시로서 홍해리 선생님을 오랫동안 봬왔지만 아직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따로 뵙기를 청하지 않더라도 걸어서 가도 30분 버스로는 몇 정거장인 도봉도서관 낭송회에만 나가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뵐 수 있기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못 가는 이유 같지 않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많은 치매행 시 편 중에 ‘짓는다는 것’ 제목의 시 한 편을 읽습니다. 치매를 앓는 아내의 사랑이 눈물로 씻은 바람과 햇빛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런 사랑을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다 치매에 걸렸을까요? 묻는다면 그보다 우문은 없을 듯 쉽습니다. 아프고 싶어서 병 걸린 사람이 없을 텐데 왜 하필 그런 병을 앓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현답을 드릴까요. 한 편의 시를 읽는 내내 아프고 먹먹할 따름입니다.
- '흐르는 물'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 . '시하늘' http://cafe.daum.net/siha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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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무것도 짓지 못한다. 늘 아내가 짓는다. “옷 짓고 밥 짓고 집 지어” 나를 살린 아내다. 나는 다만 아내가 내게 오기까지 서러운 이야기 돌아보다가 눈물지을 뿐인데, 그마저 아내는 얼른 웃음 지어 덮어버린다.
돌아보니 “눈물로 씻은” 날들이다. 못난 사람과 여기까지 건너온 세월 풀어놓자면 눈물이 강물이다. 그 강물 끝에 이르고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날에도 차마 나는 ‘옷도 밥도 집도’ 지어줄 수 없을 것 같다.
짓는 일은 아내 몫이었기에, 나 홀로 무엇을 짓는다면 얼마나 슬플까. 첫날 금강하구 노을에 기대어 칼국수를 먹은 기억만으로 눈물이 날 것이다. 어둠 걸린 강둑길을 돌아 나오다가 달맞이꽃에 멈춰 “반달 하나 하늘가에 심어 놓고” 울컥하여 고개를 돌릴 것이다.
- 금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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