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홍해리 시집『치매행致梅行』과 감

洪 海 里 2015. 10. 21. 16:30

 

 

홍해리 시집『치매행致梅行』을 편다.

구구절절이 묻어나는 아픔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교보문고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를 곁에서 돌보며 쓴 홍해리 시인의 간병기『치매행』.

아내의 몸은 기억을 상실했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그 기억의 빛을 대신 밝혀주는

휴먼 드라마에 공감하는 동안, 우리는 사랑으로 승화된 또 다른 치유의 경지를,

잃어버린 아내의 언어를 매화향기 같은 진실한 시어로 개화시킨

사랑의 격조를 만난다."라고 했고,

 

지우였던 이무원 시인은

"부인이 고장난명孤掌難鳴의 외손뼉을 치며 칠흑 같은 밤을 가고 있는 것은

평생 詩만 찾아다니느라 바빴던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더하여

하늘도 감동하고 땅도 감동하고 사람도 감동할 시 쓰라고

자신의 몸을 내놓아 소신공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 했다.

 

답사 갔다 오면서 감 몇 컷을 찍어 왔기로

시 여섯 편을 골라 같이 내보낸다.

 

   

 

 

♧ 주소를 지우다

-치매행致梅行  11

 

 

소식을 보내도 열리지 않는 주소

아내의 이메일을 지웁니다

첫눈은 언제나 신선했습니다

처음 주소를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 눈을 사로잡은 아내의 처녀

아직도 여운처럼 가슴에 애련哀憐합니다

이제는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내 사랑입니다

열어 보고 또 열어 봐도

언제부턴지 받지 않은 편지를 쓰는

내 마음에 멍이 듭니다.

 

 

 

 

♧ 병원길

-치매행致梅行  17

 

 

아내랑 병원에 갑니다

어디 가느냐 열 번을 묻습니다

왜 가느냐고 또 묻고 묻습니다

그 물음을 나는 가슴에 묻습니다

병원에 간다

의사 만나러 간다 해도

아내는

묻고 또 묻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묻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늘대는 버들가지처럼

흔들리는 내가 바보겠지요

그래도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있어

손잡고 병원 길을 올라갑니다

인생 한 번 살았다고

인생을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 번 지나친 길이라고

다 볼 수 있었겠습니까

아느작아느작 흔들리며 병원으로 들어갑니다.

 

 

 

 

♧ 짝

-치매행致梅行  24

 

 

절망과 희망은 한집에 삽니다

슬픔과 기쁨은 같은 이름입니다

고통과 즐거움은 위아래일 뿐입니다

미움과 사랑은 본시 한 몸입니다

삶과 죽음도 한 길의 여정입니다

앞과 등이 따로 보일 뿐입니다

크게 보이고 작게 보일 따름입니다

짚신도 짝이 있듯

하물며 짝이 아닌 게 없고

손바닥도 마주쳐 짝짝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아내는 지금

고장난명孤掌難鳴의 외손뼉을 치며

칠흑 같은 밤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 노래

-치매행致梅行  33

 

 

눈물로 노래를 씻어 부르면

노래마다 구구절절 빛이 날까

눈썹 끝에 별을 달고

홀로 가는 길

별 내린 풀숲에서

실을 짜 엮고 있는 풀벌레들

계절은 가릉가릉 현악기로 울리고

달빛 타고

하늘 가득 날아가는 기러기 떼

허공중에 떠가는

수많은 섬이구나

날갯짓마다 파도가 일어

가을이 젖는데

내 저 섬을 비추는 등대라면

하늘길 안내하는 불빛이라면!

 

 

 

 

♧ 집사람

-치매행致梅行  86

 

 

집은 그런 것이었다

아픔이라고 또는 슬픔이라고

무슨 말을 할까

속으로나 삭이고 삭이면서 겉으로

슬쩍 금이나 하나 그었을 것이다

곡절이란 말이 다 품고 있겠는가

한이 많다고 뭐라 했겠는가

즐겁고 기쁘다고 춤을 추었겠는가

슬프고 외로웠던 마음이

창문을 흐리고

허허롭던 바깥마음은 또 한 번

벽으로 굳었을 것이다

아내는 한 채의 집이었다

한평생 나를 품어준 집이었다.

 

 

 

 

♧ 모래꽃

-치매행致梅行  148

 

 

물새가 발가락으로 모래 위에 꽃을 그립니다

물새는 발이 손이라서 발로 꽃을 피웁니다

하릴없이 파도에 지고 마는 꽃이지마는

모래는 물새를 그려 꽃을 품고 하얗게 웁니다.

 

물새는 날아올라 지는 꽃을 노래합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간격이 한평생입니다

사람도 사랑도 물결 사이에서 놀다 갑니다

오늘도 모래꽃 한 송이 피워 올리다 갑니다.

 

 

 

가져온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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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