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시집 ‘치매행致梅行’

洪 海 里 2015. 10. 14. 08:45

 

도서출판 황금마루에서

홍해리 선생의 시집 ‘치매행致梅行’이 나왔다.

‘아내에게 바치는 안타까운 사랑 고백’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 이 시집은

<우리詩>에 연재했던 150편의 시와

임채우 시인의 발문 ‘필화筆花 한 송이’로 짜여 있다.

뜻 깊은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시 네 편을 옮겨

어쭙잖은 매화 사진을 곁들인다.

 

 

♧ 시인 임보 선생의 추천사

 

  시집 ‘치매행致梅行’은 시인이 매달 10편씩 만들어 16개월 동안 월간 <우리詩>에 연재한 작품들이다.

  아내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경을 시인의 살과 뼈를 깎아 엮어낸 사랑의 시편들이다.

  다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참회록懺悔錄이며 미리 기록해둔 순애보殉愛譜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지아비가 한 지어미에게 쏟는 사랑의 경전經典이며,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시사詩史에 오래 남을 빛나는 업적이 되리라 믿는다.

   

 

♧ ‘시인의 말’에서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

이 시집 ‘치매행致梅行’을 환자를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이름만 크고 속빈 강정이 아니기를!

또한 결코 치사찬란恥事燦爛한 일이 아니기를!

 

 

♧ 입춘 추위 - 치매행致梅行 · 2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어디 가고 싶냐 물어도

묵묵부답

조금 있다 또 문을 엽니다

밖에 나가고 싶냐 물어도

그냥 웃습니다

또 문을 열고 치어다봅니다

누굴 기다리느냐 물어 봐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또 다시 문을 열고 쳐다봅니다

속이 답답하냐 물어도

하늘만 바라보다 문을 닫습니다

입춘 날씨 매섭게 찬데

어찌 봄이 오겠습니까?

문을 열면 칼바람만

제 세상인 듯 쩡쩡하니 밀려듭니다.

 

 

♧ 겨울 풍경 -치매행致梅行 · 6

 

정월 대보름

아버지 제삿날

차고 푸른 달빛

휘영청

매화나무 마당에 가득하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시끌시끌 시끌벅적

왁자왁자 왁자지껄

젯밥 먹고 음복하고

북적북적 북적대다

다들 돌아가고 난

적막강산

가차假借한 삶

가차 없이 버리지 못하는

돌부처 한 분

앉아 계시다.

   

 

♧ 아내는 부자 - 치매행致梅行 ․ 78

 

나는 평생 비운다면서도

비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버린다 버린다 하면서도

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내려놓자 하면서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버린다 비운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내려놓는다는 말도 없이

아내는 다 버리고 비웠습니다

다 내려놓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안합니다

천하태평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걱정이 없습니다

집 걱정 자식 걱정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는 아내는

천하제일의 부자입니다.

   

 

♧ 물 - 치매행致梅行 · 150

 

그대가 그리우면

그대 곁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래도 그대가 그리우면

그대 손을 가만히 잡아 봅니다

 

그래도 또 그대가 그리우면

그대 몸에 살며시 손을 댑니다

 

그대의 몸에 몸을 대고 있으면

나는 그대로 물이 됩니다

 

그리 하여, 그리 하여

그대 속으로 서서히 스며듭니다

 

그러면, 나는

그대와 하나가 됩니다

 

그대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그대를 향해 가는 길이 납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마다

빛이 쌓이고 쌓여 꽃이 피어납니다

 

그 꽃이 피워내는 향이

천상에까지 가득 차오릅니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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