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모든 슬픔을 담은 시집, 『치매행致梅行』
2016.08.03. 08:58
나는 직업이 교수이고 1년 혹은 2년에 한 권 정도-그것이 번역책이든, 수필집이든- 책을 출간하다보니 이래저래 글을 쓴다는 작가로부터 저자가 사인 한 책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데 요즘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만약 누군가로부터 친필 사인을 한 책을 받는다면 반드시 길든 짧든 서평을 써서 드려야겠다."라고. 우리는 남들로부터 좋은 물건을 선물 받으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기뻐하지만, 정작 몇 년 동안 고생하여 만든 한 권의 책에는 물건만큼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내주신 책 잘 읽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와 같은 간단한 멘트조차도 하지 않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이러한 태도는 저술에 대한 가치를 폄하함을 넘어서 상호 존중하는 예의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고로 나 역시 저자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 위해 이 서평을 쓴다고 할 수 있다.
홍해리 시인으로부터『치매행』을 받은 것이 2016년 2월이니, 어느덧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내가 이 시집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홍해리 시인의 약력에 '청주 출생'이라 한 것을 보고 동향인이라는 생각에 전에 없던 친밀감이 들면서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곧 책장을 덮고 말았다. 눈시울이 붉어지다가, 꺽꺽 흐느껴 울다가, 아무 연관도 없는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을 부르다가, 그렇게 책장을 열었다 덮은 것이 서너 번 되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려니 눈가가 촉촉이 젖어온다. 시집 『치매행』은 인간사 모든 슬픔을 담고 있다. 블랙홀처럼 모든 슬픈 것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시인은 말한다.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 이 시집『치매행 』을 환자를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또 "이 글은 아내에 대한 관찰기록이요, 내 자신의 반성과 그 고백이라서 잘 쓰려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으니 욕교반졸欲巧反拙은 아니라 믿는다."
그렇다. 이 시집은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에 대한 정밀한 기록이요 반성의 글이요 사랑의 고백이다. "어디 가고 싶냐 물어도 묵묵부답",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만 반복하고, "아내는 묻고 또 묻고", "아내는 숟가락이면 숟가락, 젓가락이면 젓가락으로만 식사를 하고.", "방금 들은 것도 금방 잊어버리고 한 말 할 말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아내는 이름도 모른다. 아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약 먹으라면 전화기를 집어들고 세수하라 하면 칫솔을 가져오는”, 그의 아내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결국 “한평생 나를 품어준 집이었던”, “나의 두 손이었던”,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던”, “제비붓꽃 같던” 시인의 아내가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 모두 시인의 잘못이라며 자책을 한다.
(생략)
시 쓴답시고
밤낮 시詩답지도 않은 걸 끼적거리며
시 쓰는 친구들 불러내 술이나 마셔 댔으니
시에게 남편을 내주고 술에게 빼앗기고
아내는 모든 걸 놓았습니다
다 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내 탓, 내 탓입니다!
「탓」
아내의 병이 어찌 시인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겠는가마는, 자책이란 본시 동반자나 남은 자의 몫인 것이다. 그렇게 자책하여야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인은 “언제 여행 한번 가자 해 놓고, 멋진 곳에 가 식사 한번 하자 해 놓고, 봄이 오면 꽃구경 한번 가자 해 놓고” 실행하지 못했던 과거의 죄상들을 낱낱이 고백한다. 시인의 그러한 자책과 반성은 아내를 돌보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게 만들기 위한 것 같다. “어린애가 된” 아내에게 시인은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주고, “물가 어린애 같아 늘 지켜봐야”하고, “아내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고”, “아내를 유치원에 보내는” 보호자가 되었다가, 급기야는 “아내의 종이 되었다.”
당신이 내게 무었이었는가
나는 당신에게 누구였는가
생각하면 눈물부터 핑, 도는
바라보면 울컥해서 가슴만 아픈
-「백야」 중 일부
시인은 나이든 아내의 아빠가 되고 보호자가 되고 종이 되었지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핑 돈다고 했다. 바라보면 울컥해서 가슴만 아프다고 했다. 연륜이 쌓일수록, 세상에 풍화될수록, 생각하면 눈물 나지 않는 것이 없다. 바라보면 울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떤 때는 살아 있는 것이 고마워서, 어떤 때는 옆에 있는 것이 감사해서, 어떤 때는 지나온 길이 미안해서, 어떤 때는 늙어가는 것이 애틋해서. 어쩌면 사는 것이 온통 눈물 나고 가슴 아픈 일인지 모른다. 더군다나 “봄이 오는지 겨울이 오는지” 알지 못하는 아내를 곁에 둔 시인에게 눈물이 핑 돌지 않는 날이 있을까 싶다. “해가 뜨지 않는 동토”의 나라에 있는 아내에 대한 시인의 연민이 어떠할지 감히,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어찌 “아내에 대한 사랑이 달콤하고 끈끈한 막대기 사탕”같기만 할까?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된 아내를 돌보는 일은 그야말로 날마다 치르는 전쟁이다. 날마다 장렬하게 전사했다가 다시 부활하고, 부활했다가 다시 장렬하게 전사하는 지리한 혼돈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니 시인의 “사랑은 왜 이렇게 고달픈 것인가? 인생은 왜 이렇게 애끓는 것인가?”라고 하는 한탄에, 누군들 숙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하루 종일 붙잡고 매달렸지만
머릿속은 뿌옇기만 합니다
갈 곳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가 저물고 밤이 옵니다
하늘을 돌려다보며 길을 찾아봅니다
별 하나하나에 등불을 걸어 봅니다
반짝이던 별이 금세 사라지고
하늘이 먹장구름으로 덮이고 맙니다
번개 치고
천둥 울고
비가 쏟아집니다
여기저기서 벼락을 때립니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화두話頭」
시인은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한 채 미로 속에 갇혀 버렸다. 갈 곳이 떠오르지 않고 갈 길이 보이지 않는, 절벽 끝에서 방황하고 있다. 선지자의 등불처럼 반짝 빛나던 별도 사라지고 온통 먹장구름으로 덮여 절망만이 벗인 양 손을 내밀고 있는 듯하다. 번개치고, 천둥 울고, 비 쏟아지고, 벼락 치고 있느니, 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다. 그야말로 사방이 유리감옥인 것이다. “출옥”할 수도 “탈옥”할 수도 없는 그런 감옥에 갇혔다. 시인의 화두는 모든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를 돌보는 이들의 공통된 것이지 싶다. 어쩌면 미래의 누구도 시인이 던진 이 화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치매행』의 시편이 더 슬픈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시인의 아내는 불행한 중에도 행복한 여인이지 싶다.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랑의 언약을 지키지 못하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 중에 이처럼 애절하고 지극한 지아비의 사랑을 받은 여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시인 역시 불행한 중에도 행복한 사내이지 싶다. 뒤늦게 “철들어” 고백한 사랑의 노래를 들어줄 아내가 옆에 있다는 것이.
우이동 뒷골목 횟집에서 홍해리 시인과 임보 시인 셋이서 탁주를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때 임보 시인께서 “나는 난정처럼 할 수 없을 게야. 할 수 없지.”라고 하시자, 홍 시인께서 “형도 그런 상황이 오면 나처럼 할 거요. 차마...”라고 하셨다. 홍시인과 헤어진 몇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형도 아마 그렇게 했을 걸요. 차마...”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차마’, 어쩌면 그것으로 설명이 될 듯싶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사랑인 것이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사랑은 젊은 날의 파스텔 톤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섞여 있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사랑은 “하루 종일 묻고 하루 종일 대답하고, 짜증내고 화내고 후회하고 반성”한다. 짜증내고 화내고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그것이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세월 속에 풍화된 사랑은 그런 것이다. 연민이 깃든 사랑도 그런 것이다.
목마른 네 육신을 위하여,
기꺼이,
마중물이 되어 주마!
시린 너의 영혼을 위하여,
즐거이,
밑불이 되어 주마!
-「사랑에게」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된 시인의 아내는 언제쯤 시인의 사랑 고백을 명징하게 듣게 될까?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출처] 인간사 모든 슬픔을 담은 시집, <치매행>|작성자 연당하우스
- 월간《우리詩》2016.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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