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시집『치매행致梅行』
생명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박 수 빈
새벽빛이 열리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뒤척이며 잠을 깨는 시인을 상상한다. 살면서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시인은 특히 통증을 앓는 이들이며, 그 속에서 ‘생의 비의’에 겸허하게 다가간다. 여명의 시간에 시인은 내면의 안개 낀 길을 홀로 걷지 않을까. 사색에 잠기며 마음 수련을 할 것 같다. 수행이 쌓여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밀 같은 오묘한 떨림이며 시적 발견의 순간과 상통한다. 그 떨림이 모든 찌꺼기를 털어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홍해리 시인의『치매행致梅行』을 읽는데 자꾸 가슴이 먹먹해진다. 치매를 앓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지극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읊어낸 150편의 작품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홍해리 시인은 자서에서 “치매는 치매癡?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며 “매화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라며『치매행致梅行』을 통해 환자를 돌보고 있는 분들과 마음을 나누고 그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란 표현처럼 이른 봄날 피는 매화의 모습이 연상된다. 맑고 소박하고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며 매화 향기에 닿는 진수가 시편마다 스며 있다. 더욱이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성찰을 하면서 독자와 교류하기에 마음과 마음으로 통한다.
「탓」에서의 회한은 사뭇 깊다. “난蘭을 찾아다니느라 늘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자정에야 돌아와 새벽이면 빠져나가고 밤이면 다시 취해 들어”오거나 “시 쓴답시고” 또 아내를 외롭게 했던 회고의 장면들. 독자들은 저런 비슷한 일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아픔을 얘기할 때도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 보다는 내가 받은 상처를 더 크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시집에 나타나는 시인의 사무치는 마음은 염려와 배려에서 오는 자성으로 엄정하다. 이렇게 홍해리 시인은 규격화된 시론에 매이지 않고 내면의식의 흐름을 따라 솔직담백하게 시세계를 펼친다.
오늘은 아내가 조그만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유치원에서 꽃을 심는 실습을 했나 봅니다
활짝 핀 영산홍이 앙징스럽습니다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데
편지 한 장이 가지 사이에서 피어납니다
나는 이제까지 꽃을 보지 않았습니다
한때 아내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늦둥이 같은 환한 꽃 한 분
이제사 꽃거울에 나를 비춰봅니다
활짝 핀 꽃이 반짝반짝 웃고 있습니다
-「영산홍 한 분 ? 치매행致梅行 · 93」전문
아내는 치매환자를 돌보는 유치원에 다녀왔나 보다. 어른아이가 되어 천진난만하게 유치원에서 영산홍 화분을 들고 돌아왔다. 이쯤 되면 시인에게는 애틋하게 돌봐야 할 대상이 아내와 더불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영산홍 화분이 그것이며 물을 주는 심정은 지난 회오로부터 빚을 갚는 심정과 닮았을 것 같다. “한때 아내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한평생을 살았습니다”는 부분이 뼈아픈 고백으로 와 닿는다. 아내가 꽃이었다는 시적 재발견이 아리다. 이것은 미처 다하지 못한 대상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부터 출발하는 하는 것이라서 사랑의 다른 이름이고 생명을 아끼는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사랑으로 대하며 삶의 응어리를 쓰다듬고 궁극에는 평정을 회복케 하는 위안이 이 시에는 깃들어 있다.
“이제사 꽃거울에 나를 비춰봅니다/ 활짝 핀 꽃이 반짝반짝 웃고 있습니다”라는 표현도 애틋하다. 시인에게는 아내라는 꽃이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거울이다. 반사되는 거울에 측은지심이 생기고 나아가 시인은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을 넘어서 꽃에 자신의 심정을 얹어 정성껏 돌볼 것이다. 이 시간은 아프고 행복하며 명상이 되기도 할 테니, 작은 식물이 덩치 큰 사람의 위로가 되어 감동적이다. 만일 울적하거나 사는 의미를 잃었다면 누구든 작은 화분을 구해 식물을 길러 보는 것도 소박한 기쁨이리라.
「가족사진」에서는 “애들이 왔다 다 돌아가고 난 뒤” 허전함이 나타난다. 자식을 몰라보는 아내 앞에서 시인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주소를 지우다」는 “소식을 보내도 열리지 않는 주소/ 아내의 이메일을 지”우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텅 빈 자유」에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들이 나열된다. 이제 “아내는 신문을 읽을 줄 모르”고 “텔레비전을 켜고 끄는 것도 못”하고 “전화를 걸 줄도 모르”고 “컴퓨터”, “은행”, “돈”도 필요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텅 빈 자유”를 누리는「아내는 부자」라는 역설에 주목해 본다. “나는 평생 비운다면서도/ 비우지 못하고 살았”는데 아내는 “버린다 비운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다 내려놓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부자가 되었”으니 참으로 ”천하태평“인 아내. 이때 시인은 얼마나 망연자실했을지.
인간과 사물에 대해 연민이 없다면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며 이 마음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치매행致梅行』시편들의 대다수는 이런 안쓰러움에서 발화하여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의식의 흐름으로 뻗어나가는 현상을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이며 산다는 것과 죽음이란 무엇일지 거시적으로 내면심리를 투영해 살펴보면 우주의 삼라만상은 상호관계성 아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지 결코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치에 도달하게 된다. 하여 생명의 소중함을 각별히 여기는 생태시의 면모를 보인다. 생태란 모든 생명체의 살아가는 모습과 상태로 사전적인 정의가 내려져 있다. 생태시를 흔히 첨단 물질 문명 아래 자연 환경의 파괴를 각성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연결 짓는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 하여 보면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살아간다. 홍해리 시인은 극한 상황에 놓인 아내의 모습을 소재로 관계와 현상에 시인의 모습을 투사하고 생명의 소중함과 존재의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마음의 치유적 기능에 천착하고 있다.
「슬그머니」에서는 아내를 품에 안았다가 “젊음이 다 빠져나간/ 두 개의 몸뚱어리”를 느끼고 “꿈속에서도/ 물 위에 떠 있는 부란浮卵처럼/ 늘/ 불안, 불안”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사랑에게」에서 “목마른 네 육신을 위하여,/ 기꺼이,/ 마중물이 되어 주”겠다고 의지를 밝힌다. 시인은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내는 훈훈한 심성을 지녔다. “마중물”이 되는 손길은 정성과 사랑이 깃든 정신이라서 아픈 영혼을 달래고도 남는다.
특히 다음의 시는 천수만에서 날아오르는 새 떼들을 보며 느끼는 감회가 남다르다.
천수만의 천 수만의 철새 떼들
제각각 이리저리 몸 바꿔가며
우필羽筆로 하늘에 그리는 그림을 보면
동이 틀 때
해가 질 때
노을 배경의 황홀한 춤판이네
천무天舞에 홀린 고기 떼가 날아오르고
짜릿짜릿
하늘과 물속에서 그리는 그림과 춤이 똑같아
새는 고기에 홀리고 물고기는 새에 취해
온몸으로 묵화를 치며 춤추고 있어
바단지 하늘인지 모를
화엄華嚴의 한 판 군무群舞
아내여
우리 언제 저런 춤판 벌여 본 적 있었던가
저런 그림이나 한 번 그려 본 적 있었던가!
-「천수만 수묵화 ? 치매행致梅行 · 105」
수천 마리의 새들은 도약하는 생명의 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천수만의 천 수만의 철새 떼들”에서 숫자의 앞과 뒤를 바꾸고 그 발음에 실려 오는 시적 묘미가 감상 포인트이다. 새 떼들은 “화엄華嚴의 한 판 군무群舞”를 펼치며 가히 장관이었을 것이다. 새들이 무리지어 날 때는 이끄는 새와 따르는 새 사이에 서로 작용을 하면서 교신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해서 3연에서는 “천무天舞에 홀린 고기 떼가 날아”올라 “찌릿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하고 “하늘과 물속에서 그리는 그림과 춤이 똑같”다며 집중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절정은 마지막 연에서 “아내여/ 우리 언제 저런 춤판 벌여 본 적 있었던가” 하는 한탄 섞인 자조로 마무리되기에 이른다. 자유롭고 고통 없는 세상은 어디에 있나. 실로 아쉬운 아내와의 관계가 느껴진다. 시인과 아내도 훨훨 날았으면……. 새 떼처럼 화려한 군무를 펼칠 날은 언제인가.
이 대목에서 생명들을 거대한 네트워크로 파악하는 ‘인드라망’의 원리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여러 앞뒤 맥락의 상호작용 속에서 가치를 부여받는다. 홍해리 시인은 이러한 생명체에 깃든 존귀한 의미를 되새기고 미처 누리지 못한 지난 시간을 안타까워한다. 후회 없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지 오래 짚어보는 순간, 홀연, 천수만의 새 떼들과 시인과 아내의 모습이 겹쳐서 보인다.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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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빈 약력 : 광주 출생,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활동,《열린시학》평론 등단, 시집 『청동울음』,
평론집 『스프링 시학』, 상명대 강사 wing289@hanmail.net
☎ 010 4395 8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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