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시인의 여름꽃시

洪 海 里 2017. 6. 17. 04:24



달개비꽃

 

마디마디

정을 끊고

내팽개쳐도,

 

금방

새살림 차리는

저 독한 계집.

 

이제는

쳐다보지도,

말도 않는다고

 

말똥말똥 젖은 눈

하늘 홀리는

저 미친 계집 


 

 

맥문동麥門冬

 

연보랏빛 꽃방망이 하나씩 들고

아니, 온몸이 꽃몽둥이가 되어

벌 떼처럼 일어서고 있는

한여름날 늦은 오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내

그립다는 말조차 모르는 사내

흠씬 두들겨 주기라도 할 듯이 


 

 

수련睡蓮이 필 때

 

수련의 푸른 발자국

물 위에 뜨고

살며시 꽃을 피워 올리거든

천마天馬 한 마리 잡아타고

꽃 속 천리를 달려가 보라

하늘 끝까지 올라가 보라

시인이여

그대 갈 곳 어디련가

꿈속 천년 세상 끝까지

떠나라 떠나라

슬픔의 나라 눈물 속으로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찾아서.

   

 

 

추억, 지다

 

한여름 다 해질녘

봉숭아 꽃물을 들인다

꽃을 따 누이의 손톱마다

고운 물을 들인다

이쁜 반달손톱 속에는 벌써

첫눈이 내린다

매미 소리 한철 같은 누이의

첫사랑이 내린다

추억이 짓는 아스라한 한숨소리

손톱 속으로 스며들고

손가락 꼭꼭 싸맨 그리움이

추억추억 쌓이고 있다

해 설핏한 저녁에 꽃물을 들이는

눈썹마당에 이는 바람인 듯

슬슬슬 어스름이 내릴 때

가슴속에선 누가 북을 치고 있는지

다소곳 여민 적삼 안으로

그리움이 스멀스멀 스며들고

입술 촉촉 젖어 살짝 깨무는 소리

어스레한 누이의 젖은 눈가로

봉숭아꽃 하나 둘 지고 있었다.

     

 

개망초꽃 추억

 

막걸리 한잔에 가슴 따숩던

어둡고 춥던 육십년대

술 마셔 주고 안주 비우는 일로

밥벌이하던 적이 있었지

청주 서문동 골목길의 막걸리집

인심 좋고 몸피 푸짐한 뚱띵이 주모

만나다 보면 정이 든다고

자그맣고 음전하던 심한 사투리

경상도 계집애

좋아한다 말은 못하고

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묻던

그냥 그냥 말만 해 달라더니

금빛 목걸이를 달아주고 달아난

얼굴이 하얗던 계집애

가버린 반생이 뜬세상 뜬정이라고

아무데서나 구름처럼 피어나는

서럽고 치사스런 정분이

집 나간 며느리 대신

손자들 달걀 프라이나 부치고 있는가

지상에 뿌려진 개망초 꽃구름

시월 들판에도 푸르게 피어나네.

     

 

달맞이꽃

 

모자 벗어 전봇대에 걸어 놓고

고꾸라져 곯아떨어지던,

 

때로는

막차에 올라 신발 벗고

나이 든 손님마다 큰절을 하던,

 

어김없이

대문 앞에 흥건히 오줌을 쏘던

시퍼런 사내,

 

밤마다 기다리던 사람

죽어서도 못 미더워

 

애기 업고 길가에 나와 서 있는

노오란 달빛!

 

 

 

밤늦이 늘어질 때

     -밤꽃

 

몽환의 산그늘에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천근 고독의 사내가 자신을 해체하고 있다

구릿빛 비린내 느정느정 늘어져 꽃피고 있다.

 

벌거숭이 맨발로 달려가는 기적소리 들린다

푸른 천둥소리 은밀하니 진저리치는 산골짜기

허리끈 풀어진 잠들지 못하는 유월의 밤은 짧다.

   

 

 

앵두

 

보석 같은

한 알의 씨앗

저 고운 살 속에 묻고,

 

오만간장 녹아내려

들개도 옆구리에 날개가 돋는

, 유월의 입술이여!

 

네 앞에서는 목이 말라

풀물들도록

선연한 풀물들도록

차라리 풀밭에 뒹굴까 보다

 

쟁쟁쟁 빛나는 햇살과

저 푸른 산의 당당함 아래

우리들 사는 일도 물이 오르고

 

드디어 너는

속저고리 안섶을 푸니

선혈, 선혈이로다, 앵두여!

     

 

자귀나무꽃

 

1.

세모시 물항라 치마 저고리

꽃부채 펼쳐들어 햇빛 가리고

 

단내 날 듯 단내 날 듯

돌아가는 산모롱이

 

산그늘 뉘엿뉘엿 섧운 저녁답

살비치는 속살 내음 세모시 물항라.

 

2.

꽃 피고 새가 울면 그대 오실까

기다린 십년 세월 천년이 가네

 

베갯머리 묻어 둔 채

물 바래는 푸른 가약

 

저 멀리 불빛 따라 가는 마음아

눈도 멀고 귀도 먹은 세모시 물항라.

 

 

         ☖ 홍해리 페이스북에서

                 https://www.facebook.com/hongpoet?fref=ts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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