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몸 -「치매행致梅行 · 249」/ 전선용(시인)

洪 海 里 2018. 2. 7. 04:08

 

* 가슴 뭉클한 좋은 詩 한 편

 

 

/ 洪海里

 


 

세월을 버리면서

 

채워가는

 

헛 재산.

 

쌓고

 

 

쌓아 올려도

 

 

 

 

무너지고 마는 탑.

- 《우리詩》 2018. 2월호. 「치매행致梅行 · 249」

 

〈감상평〉

 

  위 시는 치매와 관련해 300여 편 '치매행'을 읊고 있는 홍해리 시인의 시편 중 249번째 시, 「몸」전문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홍해리 시인의 부인은 현재 투병 중이다. 짧지 않은 세월, 8년 동안 시인의 댁에서

직접 가료를 하고 있다. 주위에서 너무 힘드니까 요양원을 보내 치료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종용해도

노시인은 요지부동, 말을 걸면 눈을 깜빡이며 의사를 표시하는 부인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시인의 눈에서 회한의 시름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짐작조차 하기 힘든 고충의 나날, 시인은 불평 한마디 없이 순애보를 자청하며 현재까지 부인과 힘겹게 생을

살아내고 있다. 과연 누가 이렇게 극진히 간호를 할 수 있겠는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내가 시인과 같은

환경이라면 솔직이 나는 자신이 없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세월을 버리면서/ 채워가는/ 헛 재산'으로 시작되는 시는 다음 행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울컥 가슴을 저미게

한다. 보통의 사람은 주판 알을 튕기며 삶을 계획하고 또 목적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호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인의 투병 생활은 희망도 생의 의미도 막연하기만 하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딘 몸을 시인은 헛 재산이라고 일컫고 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절망감이 오롯이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힘든 일이 닥치면 사는 게 고역이라고 말한다. 사실 온전히 살아가면서 겪는 고역은

그것이 불행이든 행복이든 살아 있다는 뜻이다.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것 같은 시인에겐 몸뚱어리가 헛 재산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을 때 몸이 재산이니 건강하라고 말한다. 몸이 건강해야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다투기도 하면서 생을 열심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쌓고/ 또 / 쌓아 올려도/ 무너지고 마는 탑', 부인의 건강 회복을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했겠는가. 시인은 무신론자

이지만 어쩌면 하나님 부처님 심지어 돌멩이라도 붙잡고 기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바람이 점점 심해지는 병세

탓에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한계란 것이 있는 법이다. 자꾸만 쇠약해지는 부인을 보면서 시인은

허탈할 수 밖에 없다. 비록 7행 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여태껏 살아온 앞의 것들을 모두를 생략하고 한숨처럼

짤막하게 담아낸 시. 나는 감히 감상평을 쓰면서 절망감을 보고 있다. 시인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 수 없지만

건강할 때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탑 위에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오늘도 부인 곁에서 병수발을

하고 있다. 그렇다. 몸이 재산이다. 그러니 노시인께서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 林田 전선용(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