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의 가을 詩篇

洪 海 里 2018. 10. 2. 04:18

      洪海里의 가을 詩篇
 




9월 마지막 날

표선면 가시리 갑마장길을 걷다.

 

코스 중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 주변에는

억새가 벌써 피어나 부는 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이 어떻게나 센지

옆 사람 말소리도 잘 안 들릴 정도인데,

억새는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한껏 출렁댄다.

 

그걸 찍어 본 사진 중 몇 컷을 골라

홍해리 선생님 페이스북에 올린

가을시편과 함께 싣는다.  


 

 

가을 산에서

    -牛耳詩篇 · 8

 

혼백을 하늘로 땅으로 돌려보낸

텅 빈 자궁 같은, 또는

생과 사의 경계 같은

가을 산에 서 있었네

지난 봄 까막딱따구리가 파 놓은

오동나무 속 깊이

절 한 채 모셔 놓고

가지에 풍경 하나 달아 놓았네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에게

안부를 남기고

물이 만들고 간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무장무장

먼 산에 이는 독약 같은 바람꽃

맑은 영혼의 나무들이 등불을 달고

여름내 쌓인 시름을 지우고 있었네

서리 내릴 때 서리 내리고

스러지는 파도가 다시 일어서는 것처럼

지나간 세월이 내일의 꿈이 될 수 있을까

먼 길이 다가서는 산에 혼자 서 있었네.

 

   -시집, 벼락치다(우리글, 2006)

  

 

 

가을 들녘에 서면

 

다들 돌아간 자리

어머니 홀로 누워 계시네

줄줄이 여덟 자식 키워 보내고

다 꺼내 먹은 김칫독처럼

다 퍼내 먹은 쌀뒤주처럼

한 해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허허한 어머니의 이 누워 계시네

알곡 하나하나 다 거두어 간

꾸불꾸불한 논길을 따라

겨울바람 매섭게 몰려오는

기러기 하늘

어둠만 어머니 가슴으로 내려앉고

멀리 보이는 길에는 막차도 끊겼는가

낮은 처마 밑 흐릿한 불빛

맛있는 한 끼의 밥상을 위하여

빈 몸 하나 허허로이 누워 계시네.

 

   -시집, 벼락치다(우리글, 2006)  


 

 

시월

 

가을 깊은 시월이면

싸리꽃 꽃자리도

자질자질 잦아든 때,

 

하늘에선 가야금 퉁기는 소리

팽팽한 긴장 속에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머언 만릿길을

마른 발로 가고 있는 사람

보인다.

 

물푸레나무 우듬지

까치 한 마리

투명한 심연으로, 냉큼,

뛰어들지 못하고,

 

온 세상이 빛과 소리에 취해

원형의 전설과 추억을 안고

추락,

추락하고 있다.  


 

 

사랑이여 가을에는

    -향부자香附子

 

사랑이여 가을에는

네 몸에 불을 질러라

다 태워버려라

한여름 피어오르던 짙은 젊음

이제 마른 풀잎으로 남아

시든 허상뿐

겉불을 질러

겉으로 무성한 허무의 껍질

다 태우고 나면

허망한 잿더미

바람에 풀풀 날리고

다 쓸려가고 나면

남을 것은 이 지상엔 없다

땅 속 깊이 묻혀

불로도 타지 않고,

죽지 않고 박혀 있는

사랑의 뿌리

다시 캐내어

불로 사루고 사루면

까맣게 남는 새까만 알갱이

그것도 사랑은 아니다

다시 씻고 부시고 닦으면

한 줌 금으로 남을까

다 타서 없어진

네 사랑이 향기로울까

사랑이여

이 가을에는

네 몸에 불을 질러라

다 태워버려라.

 

    -시집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가을 수채화

 

하늘이 맑은 날

산에 올라

머리 풀어 바람에 빗듯

창틀 위 난초 이파리들

바람에 몸 씻고 있네

이파리 사이마다

바람도 한 몸 이루어

천지가 청상흔흔하다

난초 속에 부처가 앉아

바람으로 시를 빚어

푸른 향을 천지에 날리니

은은한 독경 소리

우주가 고요하다

난초꽃 속의 삼만 오천 세계

적멸 암자의

사미니 가슴속 같네.

 

    -푸른 느낌표!(우리글, 2006)

  

 

 

가을 편지

 

거대한,

투명한 공이

, , ,

튕기며

굴러가는

소리,

솔바람 냄새

난다고,

적어 보낸

오색 엽서를

또르르, 또르르르

읽고 있는

귀뚜라미,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

 

      -시집비밀(2010, 우리글)  


 

 

추석

 

차서 기울고 기울었다 다시 차면서

그대가 삶의 문턱을 넘어서기까지

천년도 더 걸렸다

치렁한 치맛자락

물 머금은 저고리 안섶

하늘하늘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개옷 스치는 소리

은분을 발라 치장한, 그대의

환한 얼굴

발그레한 볼

연연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금물이 드는

이 지상에서 그대를 본다

달아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이동 시인들 20가슴속에 피는 꽃(1996.11.)

  

 


가을 단상


한때는

오로지 올라가기 위해

올라서기 위하여

올라갔었지마는

이제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

내려가는 일

아름답게 내려가는 일

 

산천초목마다

저렇듯 마지막 단장을 하고

황홀하게 불을 밝히니

하늘이 더 높고 화안하다

들녘의 계절도

무거운 고개를 대지의 가슴에 묻고

깊은 사색에 젖어

이제 우리 모두 우주의 잠에 들 때

 

맑게 울려오는 가락

천지 가득 퍼지고

잔잔히 번지는 저녁놀

들판의 허수아비를 감싸안는다

 

산자락 무덤가의 구절초도

시드는 향기로 한 해를 마감하고

그리고

과일이 달려 있던 자리마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되니,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기 위하여

아름답게 내려가기 위하여

깊이 깊이 껴안기 위하여

오르는 것뿐.

 

    -시집은자의 북(1992, 작가정신)



가져온 곳 : 
블로그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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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