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귀북은 줄창 우네

洪 海 里 2018. 12. 31. 05:01

귀북은 줄창 우네

洪 海 里

 

 


세상의 가장 큰 북 내 몸속에 있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귀북이네

한밤이나 새벽녘 북이 절로 울 때면
나는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

봄이면 꽃이 와서 북을 깨우고
불같은 빗소리가 북채가 되어 난타공연을 하는 여름날
내 몸은 가뭇없는 황홀궁전
둥근 바람소리가 파문을 기르며 굴러가는 가을이 가면
눈이 내리면서 대숲을 귓속에 잠들게 하네

너무 작거나 큰 채는 북을 울리지 못해
북은 침묵의 늪에 달로 떠오르네

늘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북,
때로는 천 개의 섬이 되어 반짝이고 있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 시인들은 예술가적 인간형의 전형이다. 시인들은 많이 혼자 산다. 많이 혼자 잔다. 많이 생업을 때려치운다. 많이 ‘혼자’ 죽는다. 본격적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는 시인들. 본격적 생업에 종사할 수 없는 시인들.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종속될 수 없는 시인들. 불쌍한 종족이다. 가난한 종족이다. 불쌍한 종족인가. 가난한 종족인가.


  세상의 가장 큰 북 내 몸속에 있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귀북이네


  한밤이나 새벽녘 북이 절로 울 때면

  나는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

  […]

  늘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북,

  때로는 천 개의 섬이 되어 반짝이고 있네

  ― 「귀북은 줄창 우네」 부분


  “북”이 시마이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충동이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귀북”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북이 절로 운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귀북이라는 것이 절묘하다. 시마가 귀로 온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분명한 실체라는 것이다. 들은 것을 안 들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마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절로’ 찾아온다. 압권은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라고 한 것이다. ‘지상에 없는 삶’은 지상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홀로 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상에 없는 세월’을 가는 자가 홀로 가는 자이다.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벗어나 있는 자가 홀로 가는 자이다. 일찍이 바타이유는 예술가는 생산행위의 삶이 아닌 소비행위의 삶을 사는 자라고 했다.

  그냥 북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큰 북”이 “몸속에 있”다고 했으므로 불쌍한 종족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가난한 종족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큰 북’은 불쌍과 가난과 인근의 관계에 있지 않다. 아니, ‘큰 북이 내 몸속에 있다’고 자랑조로 얘기하는 자는 불쌍과 거리가 먼 자이다. 가난과 거리가 먼 자이다. 끝 연에서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북”이라고 한 것도 불쌍한, 가난한, 종족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물었을 때 ‘무엇으로 산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북’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북이 “천 개”가 있는 사람은 천 배 행복한 사람이다.

  북을 시마라고 해석했다. 북이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충동이라고 해석했다. 중간 셋째 연을 보자.


  봄이면 꽃이 와서 북을 깨우고

  불같은 빗소리가 북채가 되어 난타공연을 하는 여름날

  내 몸은 가뭇없는 황홀궁전

  둥근 바람소리가 파문을 기르며 굴러가는 가을이 가면

  눈이 내리면서 대숲을 귓속에 잠들게 하네


  정확히 말하면 “꽃”이 시마의 원인이다. “불같은 빗소리”가 시마의 원인이다. “둥근 바람소리”, “눈이 내리면서 대숲을 귓속에 잠들게 하”는 것이 시마의 원인이다. 꽃, 불같은 빗소리, 둥근 바람소리, 눈이 내리면서 대숲을 귓속에 잠들게 하는 것들이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충동을 낳는다.

      - 박찬일(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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