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다시 가을에 서서

洪 海 里 2019. 1. 3. 20:13

 

 

다시 가을에 서서 

 

洪 海 里  

 

  샐비아 활활 타는 길가 주막에
소주병이 빨갛게 타고 있다
불길 담담한 저녁 노을을
유리컵에 담고 있는 주모는
루비 영롱한 스칼릿 세이지빛
반짝이는 혀를 수없이 뱉고 있다
그미의 손톱이 튀어나와
어둠이 되고 파도가 되고 있다
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석류꽃처럼 피던
그미의 은빛 넋두리가
드디어 하늘을 날고 있다
이슬을 쫓는 저녁 연기도
저문 산천의 으스름으로 섞여
꽃잎은 천의 바다를 눈썹에 이고
서른하나의 파도
허허한 내 오전의 미련을
부르르 부르르 경련을 하게 한다.
 
- 시집『花史記』(1975)



 

 

 

 

 

 

   

 

 

 

 

 

 

 

 

 

 

 

 

* 홍해리 시인이 서른한 살 한창 젊은 나이로 박재륜, 양채영 시인과 교우하며 충주, 청주를 배회하며 샐비어 꽃무더기 새빨갛게 와와~ 함성으로 활활 불타 오르던 날의 부르르 부르르 경련을 하게 하던 것도 바로 시를 쓰는 숙명적인 힘이 아니겠는가.

서른하나 한창 젊은 나이 파도로 일렁이던 그의 피빛 뜨거운 외침은 아직도 그의 열정 속에 살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홍해리 시인은 시말이 유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시말이 존재론적 운명에 이르는 시말임도 잘 알고 있다.그는 그 자신의 영혼이 세계와의 상면 속에 이루어지는 주체적 감각과 사유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는 시인이다.그것은 그의 버릴수 없는 자존심이기도 하다.시를 쓴다는 것 그것은 소멸과 생성을 거듭하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은유다.  - 손소운(시인)

 

  * 다시 가을에 서서」는 '정서를 저류로 가진, 어느 정도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한 다소라도 감각적인 회화'라는 이미지의 정의를 연상하게 된다.(루이스의 <시적 이미지>에서)
   흔히 묘사는 감각 일변도여서 정서가 배제된 양상을 볼 수도 있으나(특히 정지용의 경우), 洪형의 시에서는 감각과 정서가 융합된 투명한 묘사를 볼 수 있다. 이 점은 확실히 洪형의 장점이다.
  윗 시에서 '그미의 손톱이 튀어나와 어둠이 되고 파도가 되고 있다'는 대목은 기발한 상징 이상의 상상 세계를 보여준다. 이 대목 전의 부분과 이 대목을 비교하면 의식 밖과 의식 안의 두 영역을 동시적으로 볼 수 있는 듯해서 흥미롭다. 그는 이와 같이 의식 내외를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그가 의식 내외를 구별짓는 벽을 헐고 있다는 점은 그의 상상력의 한 강점이다.
  한국의 시인들은 지성에 관심을 가지면 지성 쪽으로, 정서에 관심을 가지면 정서 쪽으로 몰리어, 편협적인 경향을 보이기 쉽다. 의식 내외의 벽을 헐 수 있는 능력을 가진 洪형의 상상력은 정서와 지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다. 이런 가능성은 洪형이 대성할 수 있는 좋은 징후이기도 하다.

  - 문덕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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