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남자들끼리
李 生 珍
결국 노상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홍해리 시인과 나는 띠동갑이다
해리는 자칭 독사라 했고
나는 자칭 꽃뱀이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서로 껴안고 길바닥에서 울었다
그럴 사정이 있었다
아내 때문인데
그의 아내는 지금 몇 년째 치매로 앓고 있고
나의 아내는 한두 해 앓다 갔다
그것 때문에 운 게 아니다
세상모르고
행복이 뭔지 모르고
아내가 뭔지 모르고
섬으로 섬으로 돌아다니며
해리 시인은 난초를 보고
나는 고독에 취해 섬으로 섬으로 떠돌다 아내를 잃은 것 같아
가다 말고 울어버린 것이다
둘이 껴안고 울다가
술집으로 들어가 막걸리를 권하며 흐느낀 것이다
말년에 무슨 날벼락이냐고
하지만 따뜻해지면 한 열흘쯤 섬으로 떠돌며
섬 타령이나 하자 했다
늦은 겨울밤 헤어지지 않고 손을 흔드는
독사와 꽃뱀
독사는 77이고
꽃뱀은 89
아 세월아
세월아 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시집 『무연고無緣故』(2018,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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