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몰운대운沒雲臺韻

洪 海 里 2019. 4. 16. 06:51

몰운대운沒雲臺韻


洪 海 里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몰운대에 올라 보면

길은 일생의 지도

길 위에서 사는 것이구나

길은 가로를 뻗어가기도 하고, 끊어져

순간의 고향이 되고

죽음같이 수직으로 층층이 쌓이기도 한다

떠돌이 세월처럼

길이 길을 만나 꺾이고 이어지고

오고 가는 것을 모르지만

천년을 버틴 소나무가 물 아래 구름을 안고

가고 있다

소리집을 짓는 젊은이들의 귀를 간지럽히는

저 물소리가 눈물인 것을, 이슬인 것을

해 질 녘이면

층층 산골에 죽은 낙타처럼 서 있는 몰운대

바위들은 안다

절망이 우리들의 마음에 철망이 되어

너와 나 사이에 거미줄이 쳐지고

살아온 빈터를 채우고 있다

흘러가는 물이거나

불어오는 바람이거나

밭둑의 옥수수 수염 하나 흐트리지 않는데

다만 가슴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 있어

잠시 몰운대 바위에 서니

구름장이 낮게 떠돌고

남는 것이 길뿐이구나.


- '우이동 시인들' 제18집『세상의 모든 적들』(1995,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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