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
- 낙타는 사막에서 울지 않는다
洪 海 里
한 줄기 흔적을 긁어내고 한잔의 그리움도 쏟아낸다
한나절의 막막함을 부셔내고 한 겹의 그림자도 벗겨낸다
한차례의 막막함을 잘라내고 한잠의 눈물겨움도 씻어낸다
한평생의 마음을 쓸어내고 한 장의 어둠도 베어낸다
한때의 거리를 들어내고 한달음의 허망함도 깎아낸다
한구석의 관심을 뽑아내고 한 칸의 방도 덜어낸다
한줌의 다짐을 끊어내고 한가지의 황량함도 훑어낸다
한군데의 중심을 뜯어내고 한끼의 마음도 비워낸다
한차례의 후회를 떼어내고 한마디의 말도 밀어낸다
한저녁의 슬픔을 털어내고 마침내 한 잎의 사랑도 살해한다
머리에 둥불이 켜지고 가슴에 불빛이 죽는다 백 가지 색을
지우고 지우니 백지가 된다 절며 절며 백지에 울음을 치고
백치가 된다 깊은 상처의 길이 사라지고 빈집에 굶주려 바
람에 흔들리는 마음 하나 그 아래 누워 있다 답답한 가슴에
못을 치는 소리의 껍질을 벗기고 있다 적막이 홀로 막막하
게 아픔을 지우고 있다 마침내 히말라야의 만년설 위로 떠
도는 흰 독수리 날개가 한 가닥의 햇살로 눈물겹게 반짝이
고 있다 눈먼 가슴에 별이 뜨는가.
- '우이동시인들' 24집『아름다운 동행』(1998, 우이동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