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외 4편

洪 海 里 2019. 5. 23. 03:06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외 4편

 

의 나라

우이도원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생생生生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과 행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난정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홍해리洪海里인가.

 

               -, 벼락치다(2006, 우리글)

    

 

 

수련睡蓮 그늘

 

수련이 물위에 드리우는 그늘이

천 길 물속 섬려한 하늘이라면

칠흑의 아픔까지 금세 환해지겠네

그늘이란 너를 기다리며 깊어지는

내 마음의 거문고 소리 아니겠느냐

그 속에 들어와 수련꽃 무릎베개 하고

푸르게 한잠 자고 싶지 않느냐

남실남실 잔물결에 나울거리는

천마天馬의 발자국들

수련잎에 눈물 하나 고여 있거든

그리움의 사리라 어림치거라

물속 암자에서 피워 올리는

푸른 독경의 소리 없는 해인海印

무릎 꿇고 엎드려 귀 기울인다 한들

저 하얀 꽃의 속내를 짐작이나 하겠느냐

시름시름 속울음 시리게 삭아

물에 잠긴 하늘이 마냥 깊구나

물잠자리 한 마리 물탑 쌓고 날아오르거든

네 마음 이랑이랑 빗장 지르고

천마 한 마리 가슴속에 품어 두어라

수련이 드리운 그늘이 깊고 환하다.

 

              - 독종, (2012, 북인  

    

 

자귀나무꽃

 

1.


세모시 물항라 치마저고리

꽃부채 펼쳐 들어 햇빛 가리고

 

단내 날 듯 단내 날 듯

돌아가는 산모롱이

 

산그늘 뉘엿뉘엿 설운 저녁답

살 비치는 속살 내음 세모시 물항라.

 

           -청별淸別(1989, 동천사)


2.


꽃 피고 새가 울면 그대 오실까

기다린 십년 세월 천년이 가네

 

베갯머리 묻어 둔 채

물 바래는 푸른 가약

 

저 멀리 불빛 따라 가는 마음아

눈도 멀고 귀도 먹은 세모시 물항라.

 

                 - 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호박

 

한 자리에 앉아 한평생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뻗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 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치는

날개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터리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신다.

 

                 - 황금감옥(2008, 우리글)


 

 

설마雪馬

 

눈처럼 흰 말

눈 속에 사는 말

눈 속을 달려가는 말

 

설마 그런 말이 있기는 하랴마는

눈처럼 흰 설마를 찾아

눈 속으로 나 홀로 헤맨다 한들

 

설마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

말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말 달려가는 요란한 소리만 들려올 뿐

 

한평생 허위허위 걸어온 길이라 해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막막하니

말꾼 찾아 마량馬糧을 준비할 일인가

 

오늘 밤도 눈 쌓이는 소리

창 밖에 환한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해도

 

나를 비우고 지우면서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설마를 찾아 길 없는 밤길을 나서네.

 

                  - 비밀(2010, 우리글)

 

 

          *홍해리 시선집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도서출판 움)에서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