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洪海里 시인의 대표작「가을 들녘에 서서」를 읽고 / 道隱

洪 海 里 2019. 5. 29. 10:16

* 부산시청 26 건물중 12~13층 동쪽외벽에 내건 27m x 8m(65) 크기의 '문화글판'

    (2012915일부터 1214일까지 3개월간 게시)


가을 들녘에 서서 /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사람들은 배우지 안 해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일상의 보고 듣는

마음에서 모든 욕망이 꿈틀대고 갈등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을...

 

  이 땅에서 육신을 지니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전전긍긍 고통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깨달은 사람들은 이 보고 듣는 마음의 형상을 없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깨어나라고 죽비로 내려치며 큰 소리로

알려주시는 스승이 있으니 이를 일러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깨우친 사람이고 깨우친 사람은 자연히 시인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시인이 모두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 강신주 지음

 

 

홍해리 시인!

 

이분은 천생 시인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따르는 수도자와 같습니다.

 

  백운대가 바라보이는 세란헌洗蘭軒, 시인의 집 서재에서 매일 새벽 3시에

깨어나는 시인! 달빛이 비치는 새벽에 홀로 깨어 흰 백지 위에 써 놓는

한 편의 , 그것은  바로 지혜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을 들녘에 서서」 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마음과 눈을 갈고

닦아 깨우친 시인의 오도송이 아닐까요?

 

  시는 자신의 진면목을 깨우친 사람이 자신을 표현한 글이라고 합니다.

마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며 깨우침을 설파하신 싯다르타 부처님

처럼 이 세상에서 주인으로 당당히 서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을

바로 시라고 부를 수 있답니다.

 

  결국 한 편의 좋은 시는 깊은 사색과 깨달음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피어난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되겠지요.

 

  나도 그런 꽃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아름다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은 내게 알려줍니다.

 

  그 길은 눈멀고, 귀먹고,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그때에야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난다 고 합니다.

 

「가을 들녘에 서서」

  이 시는 시인이 짧은 시간에 쓴 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가 언론에 회자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니

그것은 짧은 시 속에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선생님은 홍해리 시인의 시를 읽어 보셨는지요

혹시 마음에 남는 좋아하는 시가 있나요?

 

  누군가가을 들녘에 서서」가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말한다면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시 몇 편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바로 홍해리 시인의 꽃 시집  금강초롱의 첫 번째 시 「꽃」입니다.

 

「꽃」 시를 한 번 읽어 볼까요.

 

/ 洪 海 里

 

이승의 꽃봉오린 하느님의 시한폭탄

때가 되면 절로 터져 세상 밝히고

눈뜬 이들의 먼눈을 다시 띄워서

저승까지 길 비추는 이승의 등불.

  - 꽃시집 금강초롱/ (도서출판 움)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꽃」 시야 말로

감동을 주지 않을까요?

 

  꽃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기도 합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이 꽃이, 저승까지 길 비추는 이승의 등불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외에 아내의 치매 발병에 따른 간병일지를 시로 쓴 치매행 시편에서

추가할 수 있습니다. 치매행 시편들은 모두가 감동 그 자체이니까요.

    

치매행 시 330편 「무심중간」 같이 읽어보시지요.

 

무심중간 / 洪海里

 

새벽에 잠을 깨는

적막 강산에서

남은 날

말짱 소용없는 날이 아니 되도록

깨어 있으라고

잠들지 말라고

비어 있는 충만 속

생각이 일어 피어오르고

허허 적적

적적 막막해도

달빛이 귀에 들어오고

바람소리 눈으로 드니

무등,

무등 좋은 날!

(무심중간 치매행 330 전문)

 

  아내가 치매로 말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인에게 고통은 깨달음의 길이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3밝은 달이 비치고 산들바람 불 때, 

홀로 깨어 있는  시인에게  지금, 고통스러운 오늘이 

 "더할 나위 없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라는 깨달음의 환희가 터집니다.

 

   이 시는 치매로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치매 가족에게 그리고

병고로 힘든 사람들에게 시인께서 들려주시는 위로의 말씀이요

환희의 법문입니다.

 

  그 어떤 시보다도 치매행의 시는 시인의 속마음을 보여줍니다.

맨 얼굴 그대로 단순하게 쓴 치매행 시편이야말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살아 있는 시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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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홍해리 시인의 독자로서 치매로 죽어가는 아내와 함께 살면서

하루하루 힘든 일상 속에서 사람의 품위를 잃지 않고 시로써 고통을

승화시키는  시인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의 편지를 보냅니다.

 

홍해리 시인님!

 

  고맙습니다.

내년이면 팔순이신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시를 많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시인의 아름다운 시로써 위로를 받고 있지만  

어느 날 시인께서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사람들은 시인의 시집 속에

숨어 있는 영롱한 사리, 아름다운 시를 발견하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시인들의 바람이지만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이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되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다가

죽은 시인맑고 순수한 영혼만이 남길 수 있는 선물일 것입니다

 

홍해리 선생님!

건필하시고 늘 평안하시기 빕니다.

 

2019. 5. 26

  도은 정진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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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海里 시인

 

1941년 청주 청원군에서 출생

1964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69년 첫 시집 투망도投網圖로 등단함

그간 사단법인 우리시 진흥회의 이사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편집인으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시집

1969년 첫 시집 투망도投網圖선명문화사

1975화사기花史記시문학사

1976무교동武橋洞태광문화사

1977우리들의 말삼보문화사

1980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민성사

1987대추꽃 초록빛』 동천사

1989청별淸別동천사

1992은자의 북작가정신

1994난초밭 일궈 놓고동천사

1996투명한 슬픔작가정신

1998애란愛蘭우이동사람들

2006, 벼락치다도서출판 우리글

2006푸른 느낌표!우리글

2008황금감옥우리글

2010비밀우리글

2012독종毒種도서출판 북인

2013년 꽃시집 금강초롱도서출판 움

2015치매행致梅行도서출판 황금마루

2016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7매화에 이르는 길도서출판 움 (치매행 2시집)

2018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도서출판 움 (치매행 3시집)

2019洪海里는 어디에 있는가도서출판 움 (시력 50년 시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