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와 시인 / 남유정(시인)

洪 海 里 2019. 7. 5. 07:20

시와 시인 


남유정(시인)




  남자가 가정용 로봇 아니타를 구입한다. 아니타는 청소를 잘하고 아름다우며 아침 식사를 풍족하게 차릴 줄 안다. 가족은 모두 만족한다.

  아이들은 엄마보다 아니타가 책 읽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니타는 아이들 엄마에게 자신이 더 아이들을 잘 돌본다고 말한다. 자신은 기억을 잊지 않고 화내지도 않으며 우울해 하거나 술에 취하지도 않는다고. 빠르며 강하고 관찰력이 더 뛰어나다고. 게다가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나타날 가정의 모습을 그린 영국 영화 ‘Humans’는 최적화된 남자와 여자 로봇이 친구나 엄마를 대체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생활화된 세상에서는 모든 일을 인공지능이 더 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을 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이 무용해진다. 알파고는 이미 바둑 천재 이세돌을 가볍게 꺾었고, 의료 분야에서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부분에서 인공지능이 수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2030년까지 현재 지구상에 있는 직업의 약 50%가 사라질 것이고 미래 직업 중 60%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니 앞으로 더 급격한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까지 하는 인공지능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큰 지각변동 속에 시의 영역도 대체가 가능할까?

  지난여름 제천 청풍명월에서 열린 '우리여름시인학교'에서 임보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 쓰는 일은 외로운 일입니다. 세상과 궁합이 맞지 않는 사람이 외롭게 시라는 금맥을 찾아 깊이 파고들어 가는 것, 혼자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시입니다. 한평생 파도 찾지 못할지 모르는 도박과도 같은 일입니다. 너무나도 외롭기 때문에 함께 위로하며 나아가는 일입니다.”

 

  시인은 불가능을 추구하며 쓸 수 없는 것을 쓴다. 시는 세상에 없는 것에 입혀지는, 부조리함의 극치에서 뽑아내야 하는 언어의 옷이다. 시를 쓰는 일은 혼자 걷는 외로운 여정이다. 삶의 고통과 결핍과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없고,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인공지능으로 시인이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시는 기계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며 오직 시인의 삶을 통해 빚어지는 영혼의 산물이다. 김수영 시인은 말했다.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온몸이 온몸을 밀고 가는 것이다.”

 

 또 김춘수 시인은 에세이집 왜 나는 시인인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시인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될 자신이 없고 되기도 싫다. 시인은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시 쓰는 자체가 괴로움이었고 즐거움이었고 해서 시가 내 모든 것이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으므로 나는 시인이다.”

 

  몸으로 살아낸 시, 몸으로 깨달은 시야말로 시간을 이겨내는 시가 될 수 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몸에서 울음이란 악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다. 실패할 것임을 알면서도 쓰는 일, 무용한 것에 생애를 기울이는 일, 남들이 쓸모없다고 외면하는 일에 마음을 담그는 일이 시 아닌가. 그래서 시인은 오직 사람만이 누릴 수 있고, 사람에 의해서 빚어지는 노래일 수밖에 없다.

 

  시인이어서 행복하다. 너무도 외로워서, 이 넓은 세상에 마음 하나 온전히 누일 자리를 찾지 못해 언어의 집을 짓는 시인의 밤이 있어 즐겁다. 몸이라는 악기를 안고 익숙한 삶으로부터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운명을 지닌 시인이어서 좋다. 그리고 시인이 전 생애를 통하여 마침내 한 잎의 시가 되고, 참나무 그늘 같은 한 권의 시집이 될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그가 단상에 앉아 있을 때

마치 한 권의 두꺼운 책처럼 보였다 한다

한평생 시만 덖고 닦다 보니

육신 한 장 한 장이 책으로 엮였는지도 모른다

한마디 말씀마다 고졸한 영혼의 사리여서

듣는 이들 모두가 귀먹었다 한다

자신이 쓴 시를 스스로 풀어내자

강당 안은 문자향文字香으로 그득했거니와

몸이 뿜어내는 서권기書卷氣로 저녁까지 환했다 한다

평생을 시로 살았다면

말씀마다 꽃이 피고 새가 울어야 한다

그는 평생 모래바람 속을 묵묵히 걸어온 낙타였다

길고 허연 눈썹 위에는 수평선이 걸려 있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달빛처럼 흘렀다 한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자

먼지 한 알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 울 듯 요란했다

다시 입을 열어 말을 마쳤을 때

방안에는 오색영롱한 구름이 청중 사이로 번졌다고 한다 

그의 시는 오래된 참나무 그늘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친 걸음을 쉬고 있었다

주변에는 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한다.

- 홍해리참나무 그늘전문




ㅡ 월간『우리2017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