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인과 독자 사이 / 이재부(시인)

洪 海 里 2019. 9. 2. 11:09

시인詩人과 독자讀者 사이

이 재 부(시인)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사단법인『우리詩』에서는 매월 시인과 독자와 후원회원이 도봉도서관 시청각실에 함께 모여 「시사랑/자연사랑/생명사랑/우이詩낭송회」를 펼친다. 벌써 307회가 열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표본 같아서 행복감을 느끼며 오랜 기간 참가했다. 시인을 갈망하며 독자로 참가하다가 절차를 거쳐 회원이 되었지만 시인의 자부심보다 독자의 심정으로 행사 참가에 노력한다. 다양한 형식의 시낭송과 평생 시를 사랑하며 시 쓰기에 정진해 오신 원로시인의 말씀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고, 낭송 후에 벌어지는 회식 자리도 인생을 즐기며 배우는 도장이 된다. 귀갓길이 멀어 회식 중간에 분위기 깰까봐 슬며시 나오면서도 시흥(詩興)의 여운이 따라 오는 듯 색깔 고운 밤길이 된다.

   문인은 작품을 통하여 독자의 마음을 얻고, 작품으로 그와 내통하는 사람이리라. 독자가 없는 문학작품은 사장된 문서이니 시인과 독자는 한통속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상이 급변하여 시정(詩情)의 전달 방법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시심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으리. 작가와 독자가 한통속이 되어 감성을 교류하고 희열을 만끽하는 내통의 가교는 무엇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를 거느린 시인이 많다. 시를 통아여 독자의 감성을 사로잡고 영생을 누리기도 한다. 인생의 끝이 무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명성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사랑을 받는다. 지조를 지키며 유유자적 하는 선비, 철인(哲人), 호걸들이 풍류를 즐기며 순리와 자연을 관조하는 명시 한편 읽으면 정신이 맑아진다. 작가의 감성이 전이 되어 그 희열을 맛보며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리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명시를 남긴 시인, 그의 시상(詩想)과 삶을 바라보면 시선(詩仙)이라는 존칭이 이해가 된다.


千里行裝付一柯 (천리행장부일가) : 천리 갈 머나먼 행장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餘錢七葉尙云多 (여전칠엽상운다) : 남은 돈 7푼이 오히려 많은 편

囊中戒爾深深在 (낭중계이심심재) : 너만은 주머니 속에 깊이깊이 있으라 타일렀건만

野店斜陽見酒何 (야점사양견주하) : 들 주막 석양에 술을 보니 어찌하리.


 김삿갓 시 嘆飮野店(탄음야점)<주막에서>이다.

정처 없이 방랑하는 그에게 가진 것이라고는 없다. 삿갓과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가는 곳이 고향이요, 자는 곳이 그의 집이다. 전 재산 7푼은 비상용으로 남겨두고자 하였건만, 들 주막 석양에 술을 보니 어찌하리.『權寧漢선생 譯 전원문화사 『삶의 지혜, 김삿갓 시 모음집」에서』

   김삿갓은 걸인같이 유랑하며 살다 간 시인이다. 그는 시(詩)로 세상을 말하고 인심과 인정을 더듬으며 살았다. 그의 한시 속에는 풍자 해학을 담고 있어 신성함이나 권위에 대한 도전의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자유분방함 속에서 영혼의 자유를 누리며 시론(詩論)의 폭을 넓혀 시적 묘사에서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후세 사람들은 방랑 시인 김삿갓을 시선(詩仙)이라 부르며 문학관을 짓고 그의 일생의 자료를 모아들였다. 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며 시인의 명성을 이용하여 관광지까지 꾸미어 사람들을 모아 그의 시심을 공유한다. 시대가 바뀌어 한글세대가 대부분인 현대에서도 독자를 이끄는 그의 힘은 무엇일까.

 

   시인님들이 보내 주시는 시집을 받든가, 마음에 드는 시집을 구입하여 손에 넣으면 펼치지 않아도 따뜻한 정감을 먼저 느낀다. 시인과 독자와의 가시적인 소통의 가교는 시집이요, 시집 속에 들어있는 작품이지만 마음을 연결하는 내심(內心)의 가교는 시인이 응축한 진․선․미 속에 담겨있는 정감이 아닐까. 독자가 시 속에서 얻어내는 찬탄의 감성은 복합적이고 독자에 따라 그 경중도 다르겠지만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통로는 표현의 신비감이요, 내재한 시정(詩情)이 아닐까.

 

대장간의 화덕에서 벼린 굳은 쇠붙이만이

예리한 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로 가슴을 베인 적이 없는가?

 

해협을 향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의 모서리가 아니라

 

몇 방울의 물

 

두 안구를 적시며 흐르는

가는 눈물방울도

 

사람의 가슴을 베는 칼이 된다.

- 임보 시인의 시 「물의 칼」전문이다.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홍해리 시인의 시「가을 들녘에 서서」전문이다. 

 

 

   위 두 편의 시를 읽으면 가슴으로 전도되는 감흥에 가슴이 찡-하다. 작가가 품어내는 설법이 가슴 가득 담겨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선정(禪定)에 든 듯 그 정경(情景)이 해탈의 경지이다. 물이 칼인 것을 절감하고, 텅 빈 들녘이 눈물겨운 마음자리인 것을 저 시가 아니면 어떻게 마음에 담으리오. 작가가 내통하는 정(情)과 시상(詩想)에 독자도 함께 빠져들어 시정(詩情)의 경지로 가슴을 덥힌다. 짧은 문장의 평범한 시어이지만 그 속에 함축되어 있는 정취(情趣)에 빨려들어 시심으로 몸을 씻고 오욕을 떨쳐내는 환상 속에서 새로운 자기상을 발견하게 된다. 압축된 이미지를 통해 다양하고 정겨운 사색의 광장을 함께 대면하는 듯 시인의 세상을 독자에게 내어준다.

   독자는 시를 읽으며 무한한 상상의 세상으로 빠져든다. 작가보다도 더 먼 곳을 찾아 사색하고, 방황하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시일수록 이해하기 쉽고,  '아, 그려!', 무릎을 치며 시인이 열어 놓은 새로운 문을 찾아 들어가 또 다른 문을 열려고 한다. 작가가 장치한 비법에 말려드는 것이리라. 시대를 달리하여도 만인의 정서를 관통하는 시, 그 것은 삶의 경전인 언어의 보물이다. 시인은 언어의 보석과 인격의 낚시로 독자를 사로잡는 사람이다. 언어의 바다에서 언어의 사리로 그물을 만들고, 그 그물로 대중을 모아 감흥의 선물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시인은 세인에 앞장서 풍진을 털어내는 심정(心情)의 바람을 일으킨다. 시인님들 인고의 사색이 녹아 있는 시를 읽으며 저절로 나오는 찬사만큼의 환희는 독자의 것이다.

   독자는 시의 소비자며 신자(信者)요, 평자(評者)이다. 시 세계에 들어가 감흥의 영역을 넓히며 시인의 작시의 방법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명시를 남긴 시인의 공통점이나 인격을 찾기도 한다. 시인과 함께 어울리는 시낭송회나 세미나에 참가하는 적극성을 보이는 독자도 늘어간다. 생산자와 소비자, 시인과 독자가 함께 심정을 공유하는 시정신의 세계를 펼치는 문화의 힘은 종교와 같이 가는 청정 경전의 독송이다. 인생 험로에 이정표를 세우고 길을 밝히는 환한 마음의 광명이 시인과 독자가 함께 바라는 음덕이 아닐는지.

 

   시인과 독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시인은 독자에 끌려 시를 쓰지는 않는다. 시인이 만든 정서와 지혜의 결정체인 작품에 스스로 모여서 환호하는 사람들이 일반 독자이리라. 세태를 관망하며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여 시를 쓰는 사람이 어찌 없을까만 시인의 사도(士道)정신이 긷든 초연한 시에 영구(永久)한 독자가 모이는 것은 문화사가 증명한다. 시인이 시를 쓰지만 시가 시인을 만든다고도 한다. 시인과 독자 사이는 시가 촌수를 매기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인과 시 그리고 독자가 일정한 함수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출렁이는 세상에 마음도 함께 출렁이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를 들어내고자 하는 자기현시욕구(自己顯示慾求)를 가지고 있다. 추앙(推仰)받고 싶은 욕심은 원초적 본능이리라. 그러나 흔들림 없이 정도를 지키려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것은 독자의 일반적 속성 때문이 아닐까. 시인의 허욕이 긷든 자기현양의 편파의 시에는 정의의 골격이 없다. 그런 시에 독자가 모이겠는가. 요즈음은 대중의 시선이 시에서 떠나 있다 하지만 시의 본질에서 떠난 것은 아니리라.

   시인이 독자요, 독자가 시인인 시대에 접어들었다. 시를 즐기는 사람이 전문화되어 간다는 뜻도 있지만 세상변화의 순응하는 것이리라. 시를 쓰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시의 고귀함을 희석하는 단점도 있겠지만, 저변확대로 명시가 나올 가능성은 높아진다. 문화수준이 높아지는 징조요, 자발적 시사랑 운동의 확산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시를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작(詩作)을 위한 다독의 작업이기도 하지만 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시인이 아닌가. 고고함을 고독을 안고 시를 짓는 사람이 시인이라면 고고함의 고독을 시로 푸는 사람이 바로 독자 그 시인이다.

   시인이여! 한국의 시를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독자님이여!

  음악과 영화가 세계 사람들에게 한류 바람을 일으키듯 우리의 시도 세계의 독자를 끌어 모을 수는 없을까. 힘을 합하여 노력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우리 정서의 세계화는 여러 분야에서 전개되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 문학이 세계화 되는 날 노벨문학상은 저절로 오리라. 국가가 진일보하는데 기여하는 개척자 반열에 오르리라. 우리나라 시인의 시집이 세계의 서가를 석권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시심의 바다는 인류공통의 정서의 고향이다. 우리시가 세계 여러 문자로 번역되고 세계의 말로 독송되는 시(詩) 세계화의 꿈을 가꾸자. 우리 시인과 세계 독자 사이에 한국의 시혼이 꽃 피도록 시심의 토양을 세계화하자. 시심으로 세계를 맑게 하는 공통의 경전을 한국의 정서로 만들어 보자. 당장은 우리나라부터 정직, 염결(廉潔)의 시정신(詩精神)으로 정풍 운동의 발상지 청정지대를 확보하자.

                                                                                              (2014.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