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감상> 정곡론 / 정일남(시인)

洪 海 里 2020. 2. 15. 04:47

정곡론

 

           洪 海 里

 

보은 회인에서 칼을 가는

앞못보는 사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일을 하는지요

귀로 보지요

날이 서는 걸 손으로 보지요

그렇다

눈이 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지 않던 것

언제부턴가 슬몃 보이기 시작하고

못 듣던 것도 들린다

눈 감고 있어도 귀로 보고

귀 막고 있어도 손이 보는 것

굳이 시론詩論을 들먹일 필요도 없는

빼어난 시안詩眼이다

잘 벼려진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홍해리 시인이 도서출판 움에서 시집 「정곡론」을 펴냈다. 2020년 출발을 이렇게 힘차게 내디뎠다. 땅속에서 온갖 생명들이 지상을 향해 머리를 내밀 준비 기간에 시인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봄이 먼 남쪽에서 오는 게 아니다. 북한산 아래 사는 홍해리 시인의 생가에서 피어난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의 정신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80 편의 시를 수집해 하나의 시집을 내는 것은 시인의 새로운 우주(宇宙)를 탄생시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농부가 쌀을 생산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를 살 지우는 것이고 시인이 시를 생산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살 지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正鵠’에 대해 좀 얘기를 하겠다. ‘정곡’이란 과녁의 한 가문데 가 되는 점이다. 또는 가장 중요한 요점이나 핵심을 말한다. 중용(中庸) 14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는 <활을 쏘는 것은 군자의 태도와 같은 점이 있다. 정곡을 잃으면 자기 자신에게 돌이켜 구한다.>고 한 말이 있다. 주해(註解)에 말하기를 베어다 그린 것이 정()이고 가죽에다 그린 것이 곡()이다. 모두 후의 중심으로 활 쏘는 과녁이다.> 라고 했다. 궁도나 사격에서는 표적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관혁(貫革)의 음이 변한 것으로 본다. 보통 발사의 명중률을 수련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으로서 정확히 중심점에 명중시키기에 알맞게 동그라미를 겹친 모양의 것과 물건의 모양을 그린 것도 있다. 예전에는 곰이나 사슴 등의 가죽으로 만들었으나 오늘에는 나무판자로 만든다. 올림픽 스포츠에서는 양궁이 있다. 과녁 중심은 10점이고 다음 선이 9점 바깥 선이 8점이다. 이처럼 과녁은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정해두었다.


  <정곡론>을 말하는데 필요 없는 글이 너무 길게 차지한 감이 없지 않다. 시를 쓰는 시인들이 본질에서 이탈해 과녁에서 멀어진 시를 읽을 때 실망하게 된다. 시의 점수를 매길 수가 어렵겠지만 화살의 과녁이 빗나가 실패한 작품을 쓰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이런 점을 이 시는 지적해 준다. 이 시에는 앞못보는 사내가 등장한다. 이 비정상적인 사내는 귀로 듣고 세상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날선 칼을 손으로 만져 느끼기도 한다.

 

  세상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무성(無聲)을 듣는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시구(詩句) 하나 건질 수 없다는 것을 이 시는 일깨워 준다. 들리는 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소리, 양심의 소리, 영혼의 소리, 우주의 소리, ()의 소리, 나비의 소리, 개미의 소리...이런 소리를 듣는 홍해리 시인은 별도의 시론(詩論)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정곡론> 시집에 축복과 행운이 있길 기원 드리면서......

                                        - 정일남(시인)

[출처] 정곡론|작성자 솔봉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