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감상> 洪海里 시「정곡론正鵠論」/ 여 연(시인)

洪 海 里 2020. 2. 16. 14:36

洪海里 시집 정곡론正鵠論


여 연(시인)


  홍해리 시인의 새 시집이 도서출판 움에서 나왔다.

제목부터 심상찮다. 『정곡론正鵠論』, 시집에 논할 논자가 붙었으니, 시론이다.

시로 쓴 시론, 한번 들여다봐야겠다.


정곡론正鵠論


보은 화인에서 칼을 가는
앞못보는 사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일을 하는지요
귀로 보지요
날이 서는 걸 손으로 보지요
그렇다
눈이 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라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지 않던 것
언제부턴가 슬몃 보이기 시작하고
못 듣던 것도 귀로 보고
눈 감고 있어도 귀로 보이고
귀 막고 있어도 손이 보는 것
굳이 시론詩論을 들먹일 필요도 없는
빼어난 시안詩眼이다
잘 벼려진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 시 「정곡론正鵠論」 전문.


  정곡(正鵠)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가장 중요한 요점 또는 핵심, 과녁의 한복판이 되는 점’이라는 두 가지가 있다. “정곡을 찌르다”라는 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맞추었다는 의미이다. ‘정正’은 민첩한 솔개를 이르고, ‘곡鵠’은 고니를 가리키는데 둘 다 높이 날고 민첩해서 맞추기 힘들다. 여기에서 과녁 중에서도 가장 맞추기 힘든 부분인 한가운데를 맞추면 ‘정곡을 맞추었다’고 한다. 같은 말인 적중을 쓰지 않고 정곡을 쓴 데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주례周禮>, <중용中庸>, <예기禮記> ‘사의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활 쏘는 사람은 과녁의 가운데에 뜻을 둔다. 참으로 과녁의 한가운데에 뜻을 둔다면, 비록 적중하지는 않더라도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니, 따라서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이 먼저다(夫學如射 射者志於鵠者也 苟志於鵠 雖不中不遠矣 故學莫先於立志).”

  위의 글을 읽고 시인의 「정곡론」을 보면 시를 쓰는 자세를 학문하는 자세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칼을 가는 사내가 앞을 못 본다. 그래도 사내는 오랜 작업의 경험이 있어서 손끝으로 날이 제대로 벼려졌는지 가늠하는 경지에 있다.

  보고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슴에서 손으로 움직여 한 편의 시가 절로 태어나는 길, 멀고 험하다. 가슴에서 손까지 가는 길이 이리도 멀고 아득한데, 언제쯤 그리될까. 시인은 「정곡론正鵠論」에서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것이 다 보이게 된다고 했다. 정곡을 향해 열심히 시위를 당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