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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海里 시집『정곡론』/ 전선용(시인)

洪 海 里 2020. 2. 10. 04:05

  洪海里 시집『정곡론正鵠論

 

  전 선 용(시인)

 

 

 

  洪海里 시인의 22번째 시집『정곡론』을 도서출판 움에서 출간했다. 시선집 4권을 포함하면 26번째 시집이다. 시인으로 등단하고 시농사를 짓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詩를 지을 때마다 풍년이 들 수도 없거니와 설사 풍작이라고 하더라도 단을 묶어 추수하기까지 참으로 버거운 우여곡절을 겪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 52년차 시인은 돈도 안 되는 시농사를 짓느라 매일 여념이 없다. 그래서 나는 시인을 존경하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한 정곡론, 시인의 말에서 “한 편의 시는 칼이다.” 라고 피력한 바와 같이 그간 시인은 칼 다루기를 강호 무사처럼 야무지게 다루는 분이다. 함부로 휘두르지도 않지만, 휘두른 칼은 급소, 즉 정곡만 찌른다. 어설피 휘두르는 검객같지 않은 검객이 득세하는 무림의 세계에서 시인은 오랜동안 월간《우리詩》를 지켜온 협객, 무사의 정신을 올곧게 지켜오고 있는 분이라고 감히 단정지을 수 있겠다.

 

  이번에 출간한 시집 『정곡론』에 실린 시편 중에서 한 편인 '팬티 구멍'에 대한 글을 소개한다.

 

  아래 詩 「팬티 구멍」은 사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팬티를 선물한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팬티라는 단어만 나와도 최근 '미투'라는 화두 때문에 풍류스럽고 해학적인 이야기조차 괜시리 부담스럽지만,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난 일을 시인은 가볍지만 정곡을 찌르는 한 편의 시를 만들었다. ​​평생 교직에 몸을 담으며 시인으로서 선비스럽게 살아온 역사의 방증, 허투로 거들먹대지 않고 진중한 그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멋스러움은 바람이 부는 들판에 선 고수 칼잡이를 닮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체의 살림을 부인께서 도맡아 하시다가 치매를 앓으면서 손을 놓으셨다. 그런 이유로 시인은 수 년에 걸처 부인을 대신해 안살림을 도맡아 하신다.

  그러니 옷가지, 살림살이 하나를 장만하는 일이 얼마나 생소할 것인가.

 

아래는 시인께서 '정곡(正鵠)'에 대해 옮긴 글이다.

 

<과녁의 한가운데를 일컫는 정곡(正鵠)이란 말은 활쏘기에서 나온 말이다.
과녁 전체를 적(的)이라 하고 정사각형의 과녁 바탕을 후(候)라고 한다.
그 과녁 바탕을 천으로 만들었다면 포후(布候), 가죽으로 만들었으면 피후(皮候)라 한다.
동그라미가 여러 개 그려진 과녁의 정가운데 그려진 검은 점을 포후에서는 정(正)이라 하고, 피후에서는 곡(鵠)이라 한다.
그러므로 '정곡'이라 함은 과녁의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정(正)은 본래 민첩한 솔개의 이름이고, 곡(鵠)은 고니를 가리키는 말인데, 둘 다 높이 날고 민첩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맞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과녁 중에서도 가장 맞히기 힘든 부분인 정가운데를 맞혔을 때 '정곡을 맞혔다' 고 한 것이다. 같은 뜻을 가진 말로는 '적중(的中)'이 있다.
활쏘기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어떤 문제의 핵심을 지적했다'는 뜻으로 쓰인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원하는대로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은 무림의 세상이다. 적자생존이 당연시되는 이 바닥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선 비열한 방법도 동원해야 가능하다. 팬티가 시의 제재로 적용됐지만 시인은 7가지 팬티를 통해 어지러운 세상에 대해 무지개빛 이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꿈꾸는 이상의 세계, 좁아터진 빗장이 세상을 향하는 문이라면 꿈을 향해 시원하게 날려보낼 성물의 기능, 즉 시인의 의지가, 시인의 욕망이, 제한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대목이라고 나는 읽었다. '~했다면', 또는 '~라면'이란 가정치는 아쉬운 후회가 담겨 있다. "구멍을 시원하게 만들어/ 바람이 들락이게 하면 좋지 않겠는가"라고 4연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마지막 연에서 반전이 전개된다. 정곡(正鵠)을 꿰뚫기 위해 "피후皮候의 곡 하나 마련하고"라고 말한다.

 

  피후의 곡은 과녘 바탕이 천이 아닌 가죽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가죽은 죽어야만 남길 수 있는 물건이다. 그만큼 각오가 단단할 수 밖에 없는데 성경적으로는 아담와 하와가 죄를 짓고 동산에서 쫒겨 나갈 때 가죽옷을 입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가죽의 의미가 이 시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의 행보가 결연하다. 시인이 바라는 목표가 무엇이든 제대로 적중하기를 바라는 바다.

 

 

팬티 구멍

 

홍 해 리

 

 

평생 속옷을 직접 사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몇이서 한잔하는 자리에서 했더니
한 친구가 슬그머니 나갔다 잠시 후
두루뭉술한 보따리를 내밀었다

 

월화수목금토일
일곱 개의 색색 팬티가 들어 있었다
보남파초노주빨
숙녀는 날마다 입술 색깔을 바꾼다든가
매일 속옷을 갈아입는다든가 하는
야릇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새로 얻어 입은 속옷의 대문이 너무 작다
게다가 가운데 빗장까지 달려 있다
아무리 귀물이라 잘 모셔야 한다지만
일 볼 때 성물聖物/性物을 꺼내기가 힘들고 어렵다
고쟁이처럼 탁 터졌으면 좋으련만

 

운명의 덫이 아니라면
성스런 속곳 아닌 속옷을 만드는 이들이여
귀물을 귀중히 여기는 건 좋지만
쉽고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있도록
구멍을 시원하게 만들어
바람이 들락이게 하면 좋지 않겠는가

 

이걸 어찌 날마다 색깔별로 갈아입을꼬
일주일 하루하루 무지개 활을 펼치니
날마다 화살을 어디로 날릴꼬
피후皮候의 곡 하나 마련하고
정곡正鵠을 맞히며 살아야겠다
"적중的中!"

 

“Seven Days in a Week!”

 

 

 <洪海里 시인 약력>

* 충북 청주에서 출생.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1964)하고 1969년 시집『투망도投網圖』를 내어 등단함.

* 시집『투망도投網圖』(선명문화사, 1969)『화사기花史記』(시문학사, 1975)『무교동武橋洞』(태광문화사, 1976)『우리들의 말』(삼보문화사, 1977)『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민성사, 1980)『대추꽃 초록빛』(동천사, 1987)『청별淸別』(동천사, 1989)『은자의 북』(작가정신, 1992)『난초밭 일궈 놓고』(동천사,1994)『투명한 슬픔』(작가정신, 1996)『애란』(우이동사람들, 1998)『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푸른 느낌표!』(우리글, 2006)『황금감옥』(우리글, 2008) 『비밀』(우리글, 2010)『독종毒種』(도서출판 북인, 2012)『금강초롱』(도서출판 움, 2013)『치매행致梅行』(도서출판 황금마루, 2015)『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 『매화에 이르는 길』(도서출판 움, 2017)『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도서출판 움, 2018)와

* 시선집『洪海里 詩選』(탐구신서 275, 탐구당, 1983)『비타민 詩』(우리글, 2008)『시인이여 詩人이여』(우리글, 2012)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도서출판 움, 2019)를 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