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일흔아홉 노 시인의 아내 사랑 이야기

洪 海 里 2020. 2. 27. 09:51

            일흔아홉 노 시인의 아내 사랑 이야기                 

                       임덕영 | 조회 16 |추천 0 | 2020.01.14. 09:51




<《전원일기》(田園日記span id="style" style="line-height: 25px;">
  
일흔아홉 노 시인의 아내 사랑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아내에게 치매가 왔다 
홍해리 시인에게는 청천벽력이요 세상의 
중심축이 바뀌는 큰 충격이었다 
믿기 어려웠던 시인은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고 
했다. 매화에 이르는 길, 무념무상, 순진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거라고 단어의 
뜻을 바꾸고 아내를 바라보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시인에게 가장 소중한 건 아내뿐이다. 
서로 다른 반쪽끼리 만나 하나가 
되어 살아온 지 어언 45년, 함께 나누었
던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충격
이었다. 아내가 없는 시인의 삶은 생각
조차 못 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뭐라 하면 알아듣는 것인지
눈을 끔벅끔벅 깜박이다 감아 버립니다
나를 원망하는 것인지
내가 불쌍하다, 한심하다는 것인지
종일 말 한마디 없는
아내의 나라는 대낮에도 한밤중입니다
말의 끝 어디쯤인가
달도 오르지 않고 별도 반짝이지 않는
그곳을 혼자 떠돌고 있는 것인가
오늘도 아내는 말 없는 말로 내게 속삭
입니다.
이번 9월 초에도 치매를 앓는 아내에게
바치는 안타까운 사랑 고백
「침묵의 나라 -치매행致梅行 · 281」
전문이다.

홍해리 시인은 1941년 충북청주 출신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 후,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자리를 잡았다. 
1969년 시집 『투망도』로 등단했으며, 
지난해에 펴낸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라는 제19 시집이며, 『매화에 
이르는 길』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호
하며 기록으로 남기며 쓴 제18 시집 
『치매행』의 제2부 형식이고, 
노 시인의 스무 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시집이 나오기도 전부터 시인은 전국의 
치매 환자 요양시설의 주소까지 파악했
단다. 임채우 시인은 “ 시인님께서는 
그 와중에도 혈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 그 어떠한 시보다도 진실하고 
감동적이며 깊이가 있는 절창입니다.”
라고 발문에서 밝혔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 땅의 치매 환자 80여만 명
을 돌보는 가족은 물론이고 수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 이원규 북카페 

 
○ 자료:홍해리 시집'치매행(致梅行)'
○ 음악 :사랑하는 당신이- 패티김
○ 편집 : 송 운(松韻)


 
♧ 텅 빈 자유 
     -치매행致梅行 · 79
 
아내는 신문을 읽을 줄 모릅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끄는 것도 못합니다
전화를 걸 줄도 모릅니다
컴퓨터는 더군다나 관심도 없습니다
돈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돈이 어디에 필요하겠습니까
은행이 무엇인지 모르니
은행에 갈 일도 없습니다
통장도 신용카드도 쓸 줄 모르니 버려야 
합니다
버스카드도 필요가 없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정말 이기이긴 한 것인가
요즘은 헷갈리기만 합니다
이름을 몰라도 칼은 칼이고
사과는 사과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몰라도 아내는 자유인
입니다
지는 해가 절름절름 넘어가고 있습니다

♧ 마취 
     -치매행 · 53

여기부터 천릿길
지금부터 천년을
홀로 
가는 길
생生의 흔적을 지우며
푸른 강물 따라
흐르는, 흘러가는
초행길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에 흔들리는
마른 꽃대궁
하나.
  
♧ 행복 
   -치매행致梅行 · 55
몸 안의 철이 다 빠져나갈 때
우리는 철이 든다 합니다
철이 난다 합니다
그러니 들고 나는 것이 하납니다
한때는 불 속으로 들어가
설레고 안달했지마는
이제는 은은한 염불소리
물빛으로 흐르는 속에
영혼의 빈자리마다
난초꽃 한 송이 피워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니
세상, 사람들 모두가 따뜻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떴습니다
아내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갑니다.

♧ 자유 
    -치매행(致梅行) · 63 
나는 자유를 꿈꾸었습니다.
자유는 내 시詩의 원소,
물이요 불이요 흙이요 바람입니다
나는 몇 개의 원소로 지어졌는지 모릅니다
다만 자유라는 원소를 찾고 있습니다.
자유는 만공滿空이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세상입니다
자유는 수천 길 바닷속에 있고
천삼백 도 가마 속에도 있습니다
나는 아직 자유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며 떠돌고 있습니다
아내는 나보다 먼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 꽃은 왜 지는가
    -치매행致梅行 · 72
소녀의 손가락에 나비 한 마리 내려앉았습니다
금빛 나비 여린 날개로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금세 나비는 날아가 버리고
꽃은 덧없이 져 버렸습니다
꽃처럼 지는 것이 어디 있는가 묻습니다
꽃은 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왜 하염없이 지고 마는지 더더욱 모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합니다
덧없어서 애틋하다고 합니다
하염없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가슴에 새겨 주고 꽃은 지고 맙니다
절로 피는 꽃이 금세 어두워지듯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오늘도 찬바람 부는 벌판으로 나갑니다.
 그곳을 찾아서 
   -치매행致梅行 · 76
오동이 속을 비워 
소리를 품는, 
새들이 뒤로 날고 
화살이 어디에도 박히지 않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오래 산 사람이 
점점 어려지는,
칼을 벼리지 않아도 
날빛이 천년이나 빛나는,
깨끗한 육신이 서서 잠을 자고
지극한 영혼이 꿈도 서서 꾸는,
그곳을 찾아 아내는
웃음으로 해탈解脫의 문을 엽니다.


1986년 우이동 인근에 살던 홍해리 시인을 
비롯한 이생진, 채희문, 임보 시인 등이
 ‘생명과 자연과 시’로 의기투합해 
<우이동 시인들>이란 동인회를 결성했다. 
시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시낭송회와 월간 
문예지도 만들었다. 
헤밍웨이처럼 하얀 수염을 멋지게 다듬어 
기르는 홍해리 시인은 청바지를 즐겨 입는 
만년 열혈청년이다. 
1987년부터 30년 이상을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이끄는 리더이다.
<우이시낭송회>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3시에 도봉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번 2020년 1월 시낭송회가 379회 째이다.  
설과 일정이 겹쳐 2020년 새해 첫번째 낭송
회는 2월1일(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 http://cafe.daum.net/dragon-8 <용팔인터넷동호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