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난초 / 정형무(시인)

洪 海 里 2021. 1. 1. 06:15

난초

 

정형무(시인)

 

 

매란국죽 중에서 매화, 난초, 국화는 그윽한 향기가 제각각 일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려말 무렵부터 란을 재배하기도 하고 사군자 중 하나로 묵란을 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여성의 이름에도 ‘란蘭’이 들어가면 예쁩니다. 난설헌蘭雪軒은 말할 것도 없고, 제 경우에도 윤동주의 ‘패.경.옥’처럼 ‘란’과 함께 떠오르는 이름이 몇 있습니다. 신석정 시인도 그랬나 봅니다.

 

난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蘭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작은 짐승’ 중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병상의 아내에게 바치는 수백 편의 눈물겨운 헌시, ‘치매행致梅行’을 쓰신 홍해리 시인의 아호도 ‘난정蘭丁’입니다. 한때 난초에 미쳐 돌아다니신 걸 후회하셨지만 인생이 그런 걸 어찌합니까. 이제 ‘병상의 아내 팔아 쓰신 시’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배고프면

밥 먹자 하고,

 

아프면

병원 가자는,

 

말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걱정 없겠다

정말 좋겠다.

(‘원願’, 치매행169)

 

저도 난초를 캐러 아버지를 따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가슴을 후비던 솔바람 소리를 기억합니다. 아무튼 야생난초는 그런 곳에 자생하나 봅니다.

작년 이른 봄, 꽃집을 지나치다 난초전시회를 가보게 되었습니다. 지역마다 난초동호회가 있어서 애지중지하던 난을 때맞춰 내놓나 봅니다. 장소는 전주교대 체육관이었고 때는 삼월 초였습니다. 몇 장을 중 골라봅니다.

- 2020. 12. 30. 정형무(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