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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밝아온다” 22세 흑인여성의 축시, 상처난 미국을 다독였다

洪 海 里 2021. 1. 22. 06:21

분열 치유의 축시 낭송… 공화당원 가수 ‘화합의 축가’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작시 ‘우리가 오를 언덕’을 낭송하고 있는 어맨다 고먼. 22세의 나이로 취임식 무대에 선 그는 분열로 지친 미국 국민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던져 취임식의 스타로 떠올랐다(위쪽 사진). 이날 취임식에는 공화당원인 컨트리가수 가스 브룩스도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면서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절을 함께 부르자고 하는 등 통합을 강조했다. 워싱턴=AP 뉴시스

 

20일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선사한 이는 22세 흑인 여성 시인 어맨다 고먼이었다. 이날 고먼은 자작시 ‘우리가 오를 언덕(The Hill We Climb)’을 낭독해 취임식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서 고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NBC방송은 “고먼이 쇼를 훔쳤다”고 전하기도 했다.

노란 코트를 입고 빨간 머리띠를 한 고먼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사 직후에 무대에 올랐다. 그는 약 5분에 걸쳐 낭송한 자작시에 갈등과 분열을 넘어 통합과 화합으로 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자신을 노예의 후예이자 한부모 아래서 자란 깡마른 흑인 소녀라고 소개한 고먼은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둠에서 빛은 어디에 있을까요? 동은 부지불식간에 틉니다. 민주주의는 잠시 지연될 수 있지만 영원히 패배할 수는 없습니다”라며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로 인한 혼란, 당파 싸움, 팬데믹으로 지친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어디서 빛을 찾아야 하는가?”라고 시작해 “우리에게 빛을 바라볼 용기가 있다면 빛은 언제나 거기 있을 것”으로 끝맺는 이 시를 고먼은 시위대가 의회를 점거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밤을 새워 완성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분열을 넘어설 통합의 희망을 담은 시”라고 평가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지금 이 순간에 이보다 적절할 수 없는 시를 낭송했다. 그녀와 같은 젊은이들은 ‘빛은 감히 이를 보고 마주할 용기가 있는 자들에게는 언제든 있다’는 증거”라며 이날 고먼이 낭송한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해 찬사를 보냈다. 고먼이 시 낭송을 마치자 10만 명을 넘지 않았던 고먼의 트위터 팔로어 수는 110만 명을 넘어섰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고먼은 어린 시절 바이든 대통령처럼 말더듬증으로 고생한 아픈 경험이 있다. 고먼은 시를 쓰면서 언어 장애를 극복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말더듬증을 극복하는 데 시 낭송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도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즐긴다.

고먼은 16세에 로스앤젤레스 청년 계관시인이 됐고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2017년엔 미국 최초로 도입된 청년 계관시인으로 뽑혔다. 2017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열린 낭독회 동영상을 본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남편의 취임식 무대에 고먼을 초청할 것을 추천했다. 이번 취임식은 고먼이 지금까지 선 무대 중 가장 큰 무대였다. 고먼은 이날을 위해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고먼이 취임식에서 착용한 귀걸이와 반지는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선물했다. 윈프리는 트위터에 “젊은 여성의 활약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독하는 전통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다. 당시 86세인 노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한국에도 잘 알려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낭독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 때는 흑인 여류 시인인 고(故) 마야 앤절루가 ‘아침의 맥박’을 낭송했다.

- 임보미 기자 bom@donga.com(동아일보 20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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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를 언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스타를 낳았다. 자신이 직접 쓴 축시를 낭독한 22세의 어맨다 고먼이다. 그가 5분 40초에 걸쳐 낭송한 ‘우리가 오를 언덕(The Hill We Climb)’은 세계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노예의 후손인 말라깽이 흑인 소녀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도 대통령이 되기를 꿈꾸다가 그를 위한 시를 낭송합니다. (중략) 민주주의는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영원히 패배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우리는 재건하고 화해하고 회복할 것입니다.’

▷그를 미 역대 최연소 축시 낭독 시인으로 발탁한 건 대통령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다.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고먼은 2017년 미국에서 최초로 도입된 청년 계관시인에 선정돼 의회도서관에서 낭독회를 가졌다. 30여 년간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이민자나 소외 계층에 영어를 가르쳐 온 ‘바이든 박사(바이든 여사)’가 당시의 영상을 보고 이번에 그에게 축시 집필과 낭송을 요청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 고먼은 8세 때부터 시를 썼다.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집에서 텔레비전 시청을 제한했기 때문에 쌍둥이 자매인 개브리엘과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자랐다. 그런데 그는 바이든 대통령처럼 어린 시절 청각장애로 말을 더듬었다. 얼마 전까지도 ‘R’ 발음이 어려워 자신이 졸업한 하버드대 발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뮤지컬 ‘해밀턴’의 ‘Aaron Burr, Sir’ 노래를 연습하며 장애를 극복했다.

▷취임식 후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시 낭독 전에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나는 흑인 작가들의 딸이야. 우리를 옭아맨 사슬을 끊은, 세상을 바꾼 자유 투쟁자들의 자손이야. 두려워하지 마.” 그 말을 듣던 앤더슨 쿠퍼 앵커는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말했다. “당신은 대단해요.” 고먼은 장애는 약점이 되지 않았다고, 오히려 자신을 이야기꾼으로 만들어줬다고 한다.

▷시인의 꿈은 공동체가 도왔다. 14세 때 ‘WriteGirl’이라는 비영리 단체에 가입해 글쓰기를 배운 게 지금의 고먼을 있게 했다. 그는 사회로부터 받은 걸 나누기 위해 2016년 ‘하나의 펜 하나의 페이지(One Pen One Page)’라는 글쓰기 비영리 기관을 세워 미래세대를 키우고 있다. ‘우리가 빛을 바라볼 용기가 있고, 스스로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빛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고먼은 빛이 되었다. 2036년 미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는 그의 요즘 꿈은 ‘내가 쓰는 시가 미국의 통합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언덕을 넘고 우리가 함께 오를 언덕을 알려준 그의 꿈을 응원한다.

-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동아일보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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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빛이 되는 용기

 

한 편의 시가 감정의 격류를 몰고 올 때가 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어맨다 고먼이라는 젊은 시인이 5분 남짓 낭독한 자작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이 그랬다.
“우리는 끝이 없는 그늘 속에서 빛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자문합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에서 그늘은 미국 사회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거쳐야 했던 폭력과 불신, 냉소와 증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치욕스러운 의사당 폭력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성차별, 코로나로 인한 죽음들이 다 그늘이다. 그래도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슬퍼할 때조차 성장했고, 상처를 입었을 때조차 희망을 품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랬다. 인간은 늘 슬픔과 상처를 딛고 살아왔다.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무척 낙천적이다. 시인이 흑인 노예의 후손이며 싱글맘 밑에서 성장했고 언어장애가 있었다는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시는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한다. 고먼이 시를 쓰게 된 것은 언어장애 때문이었다. 그녀는 외국인이 아니었음에도 발음이 서툴렀다. 특히 ‘R’ 발음에 애를 먹었다. 그래서 책에 매달렸고 2017년에는 최초의 전미 청년 계관시인이 되었고,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시를 낭독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언덕을 오른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통령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언어장애가 있던 사람이었다.

이것이 어찌 개인만의 일이랴. 개인에게 언덕이 있듯이 국가와 공동체에도 올라야 하는 언덕이 있다. 시인이 그늘을 떨쳐내자고 하는 이유다. “빛을 볼 용기만 있다면, 그리고 그 빛이 될 용기만 있다면, 우리에게 빛은 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빛을 찾으려 하고 때로는 스스로 그 빛이 되려는 용기만 있으면 그늘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어찌 미국만의 일이랴. 용기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냉소의 그늘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스스로가 빛이 ‘되는’ 용기.

- 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동아일보 2021.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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