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그림으로 읽는 詩 / 전선용(시인)/《우리詩》2021. 6월호.

洪 海 里 2021. 6. 8. 09:11

<그림으로 읽는 詩>

 

*  그림 : 전선용 시인.

 

 

아내의 나라

- 치매행致梅行 · 408

 

洪 海 里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일까

 

첩첩산중 작은 매화마을일까

 

아무리 바라다봐도

 

보이지 않네!

 

- 홍해리 시인의 시집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에서.

 

 

* 홍해리 시인의 「치매행」 421편의 시 중에 가슴 저미지 않는 시가 하나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존재가 서서히 소멸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생각보다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볼 때 치매를 앓던 아내를 다른 나라로 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는 안다. 사람은 예외 없이 자기 나라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동하는 의식의 절차는 늘 고통이 따른다.

그 나라의 의미가 종교적 차원에서 본다면 천국이거나 지옥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아내의 나라는 어디일까. 여기에서 시인은 사후세계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란 말이 성경에 나온다. 죽음이란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로초를 백날 먹는다 한들, 인간은 때가 되면 그의 나라로 갈 수밖에 없는 아주 나약한 존재다.

시인은 다가올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나라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바라다봐도// 보이지 않네!”를 통해 시인은 이 나라에서 오래도록 함께하고픈 욕구를 숨김없이 나타내고 있다. 삶의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이별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이별은 헤어짐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선을 말한다.

그래서 유한생명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생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넉 줄의 시이지만, 행간의 슬픔은 바다보다 넓고 깊어 보인 다. 존재의 가치는 작게는 개인, 넓게는 나라, 결국 우주에 이른다. 존재론이 소멸론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 우리는 유한한 생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존재의 가치는 사라짐으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반대로 존재가 항구적이고 지속성 을 가진다면 그것은 영원성, 즉 불멸의 영역, 즉 신의 영역에 해당된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나라 아니, 볼 수 없는 나라의 추측은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 에덴동산일 것이다. 삶과 죽음의 상관관계는 구분의 의미다. 같은 시공간에 머무를 수 없는 아쉬움이 시 전체를 압도하고 있지만, 종국에는 아내의 나라가 곧 나의 나라인 것을 시인은 아는 듯하다.

        - 월간 《우리詩 》 2021. 6월호.                   

        - 전선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