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행致梅行 / 홍해리
"밤낮없이 두통으로 고생하는
너, 서러워서 나는 못 보네"
- 「정 – 아내에게」 부분.
"이때가 ‘致梅行’의 시작이었다.
한일병원, 삼성병원, 서울대학병원, 고려대학병원을 거쳐
다시 한일병원으로
먼 길을 돌아 돌아 집으로 왔다"
- 「아내여 아내여」 부분 (치매행 276)
"아내가 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집을 나섭니다/ 눈은 내리는데/ 하얗게 내려 길을 지우는데/
지팡이도 없이 밖으로 나갑니다/ 닫고 걸어 잠그던 문 다 열어 놓고/
매듭과 고삐도 다 풀어버리고/ 바람처럼 강물처럼 구름처럼/ 텅 빈
들판처럼 혈혈孑孑히......, / 굽이굽이 한평생/ 얼마나 거친 길이었던가/
눈멀어 살아온 세상 / 얼마나 곱고 즐거웠던지 /귀먹었던 것들 다 들어도/
얼마나 황홀하고 아련했던지,/ 빛나던 기억 한꺼번에 내려놓고 /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사는 / 슬픈 꿈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삶이 아득한,
아침에 내린 눈 녹지도 않은/ 다저녁때 / 아내가 또 길을 나섭니다."
- 「다 저녁때」 전문 (치매행 1)
" 아내는 다시 한 살이 되고 나서/ 다시 한 살이를 시작하는/
어른애가 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어른이가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가방을 메고/ 어른이 유치원엘 갑니다"
- 「어른애」 부분 (치매행 157)
"한순간/ 한눈팔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지뢰는 폭발합니다/
새벽부터 대책 없이 지뢰 제거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세상이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 퇴직하고 할 일 없이 노는 사내/
그냥 노는 꼴 못 보겠다고 / 일거리 만들어 주는 아내/
똥 칠갑漆甲이 된 손을 닦고 씻고/ 마주 앉아 아침상을 비웁니다"
- 「방심」부분 (치매행 176)
"새벽 네 시/ 아내가 2층으로 올라갑니다/ 불 꺼진 방으로 올라갑니다
“어디 가? 내려와!”/ “ 얘, 어디 갔어?”/ “걔, 여기 없어, 제 집에 있지!”/
아내는 딸애가 시집간 것도 모릅니다. "
- 「새벽 네시」 부분 (치매행 155)
"배고프면/ 밥 먹자 하고,// 아프면 / 병원 가자는, //
말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 걱정 없겠다/ 정말 좋겠다."
- 「원願」, (치매행 169)
"이제는 왼쪽 팔을 움직이는 것이 전부/ 온몸을 침대에 맡긴 채/
허공으로 눈길을 던질 때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애절합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하다못해 집 뒤 둘레길이라도 걸었을 것을/
이제와 생각하니 한이 됩니다"
- 「마지막 나들이」 (치매행 317 부분)
"삼 년을 홀로 누워 // 미완의 삶을 잇는 // 아내의 눈빛 //
내 가슴에 그냥 박히는 // 천의 화살!"
- 「애절哀切」 전문 (치매행 410)
"새벽에 잠을 깨는/ 적막 강산에서/ 남은 날/ 말짱 소용없는 날이 아니 되도록/
깨어 있으라고/ 잠들지 말라고/ 비어 있는 충만 속/ 생각이 일어 피어오르고/
허허 적적/ 적적 막막해도/ 달빛이 귀에 들어오고/ 바람소리 눈으로 드니/
무등, / 무등 좋은 날! "
- 「무심중간」 전문 (치매행 330)
"아내는 자유의 나라에서 / 놀고 있는데, // 작달비 내리 퍼붓는/
해질녁// 너덜겅길/ 비틀비틀 걸어가는 // 사내 하나/
등이 굽고 어깨가 처진."
- 「해질녁」전문 (치매행 151)
"아픈 것도 모르고 누워 있는 사람도 있는데/
힘든다는 말 하지 말자/ 식욕부진/ 체력 저하/ 수면 부족/
당연한 일 아닌가"
- 「간병」 부분 (치매행 307)
"나이 든 사내/ 혼자 먹는 밥.// 집 나간 입맛 따라/ 밥맛 달아나고,//
술맛이 떨어지니/ 살맛도 없어,// 쓰디쓴 저녁답/ 오늘은 눈썹도 천근이다 "
- 「오늘은 눈썹도 천근이다」전문 (치매행 231)
"병든 아내 똥 한 번 안 만져 보고/ 남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집사람 기저귀 갈아주고/ 뒤처리를 하다 보면/
내 손은 이미 황금손이 되어 있다"
- 「비닐장갑」 부분 (치매행 191)
"어느 날/ 둘이서 나란히 누워 있다고/ 놀라지 말 일이다//
세상이 다 그렇고/ 세월이 그런 걸 어쩌겠느냐//
말이 없다고/ 놀라지 마라/ 이미 말이 필요 없는 행성에서//
할 말 다 하고 살았으니/ 말이 없는 게 당연한 일//
천지가 경련을 해도/ 그리워하지 마라/ 울지 말거라//
유채꽃 산수유꽃 피면/ 봄은 이미 나와 함께 와 있느니."
- 「자식들에게」 전문 (치매행 218)
"초저녁 자리에 들어/ 실컷 잔 것 같은데/
이제 / 겨우 열 시.//
또 한껏 잔 듯해/ 시계를 보니/ 열두 시 자정! //
아직 / 오늘에 머물러 있네"
- 「전야」 부분 (치매행 419)
"주변에서, 이제 그만,/ 아내를 요양시설에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어/ 그 말을 받아들일 수 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만도 고마운 일/ 곁에 있어 주는 것도 감사한 일//
이제껏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빈손으로 떠나보낼 수는 없습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견뎌내고/ 가는 데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미안합니다!”"
- 「이제 그만」 전문 (치매행 267)
"삶은 감자 한 알/ 달걀 한 개/ 애호박 고추전 한 장/ 막걸리 한 병//
윤오월 초이레/ 우이동 골짜기/ 가물다 비 듣는 저녁답/ 홀로 채우는 잔."
- 「만찬」 전문 (치매행 237)
"마누라 아픈 게 뭐 자랑이라고/ 벽돌 박듯 시를 찍어내냐?/
그래 이런 말 들어도 싸다/ 동정심이 사라진 시대/
바랄 것 하나 없는 세상인데/ 삼백 편이 넘는 허섭스레기/
부끄러움도 창피한 것도 모르는/ 바보같이 시를 찍는 기계다, 나는!"
- 「시를 찍는 기계」 부분 (치매행 346)
"기왕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했으니/ 천 편의 시를 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신Muse詩神도 감동하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환자의 병을 말끔히/
낫게 해 줄 것입니다/ 축원합니다! //
그래 천 편의 시를 쓰자/ 아니, 천 편 아니라 만 편인들 쓰지 못하랴/
병든 마누라 팔아 시를 쓴다고/ 누가 얄밉게 비아냥대든 말든/
그게 뭐 대수겠나/ 그래서 아내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천 편, 만 편의 시를 쓰고 또 쓰리다!"
- 「천 편의 시」부분 (치매행 347)
"아내가 하얀 옷을 입고 가고 있었다.// 빛나는 흰빛, 그림자도 뵈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홀로 가고 있었다.// 기해년 정월 그믐 경칩의 새벽이었다."
- 「흰 그림자」 전문 (치매행 392)
"껴안아야 할 사람과/ 떠나보내야 할 사람을 위하여/
별리別里를 찾아/ 별과 별 사이를 헤매는 이/ 우두망찰 해 서 있을 때도/
이 별과 저 별을 노래하는 일."
- 「별리를 찾아서」 부분 (치매행 386)
이
・
별
・
은
・
연
・
습
・
도
・
아
・
프
・
다
・
!
-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 전문 (치매행 421)
[출처] 치매행致梅行/홍해리|작성자 성기태
'시론 ·평론·시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壽軒 풍경 / 여국현(시인) (1) | 2021.08.12 |
---|---|
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⑭ 홍해리, 마음이 지워지다 (0) | 2021.07.31 |
가을 하늘 (0) | 2021.07.29 |
수의에는 왜 주머니가 없는가 (0) | 2021.07.29 |
홍해리 시인의 아내에 대한 3편의 절창絶唱 (0) | 2021.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