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녁때
- 치매행致梅行 · 1
洪 海 里
아내가 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집을 나섭니다
눈은 내리는데
하얗게 내려 길을 지우는데
지팡이도 없이 밖으로 나갑니다
닫고 걸어 잠그던 문 다 열어 놓고
매듭과 고삐도 다 풀어버리고
바람처럼 강물처럼 구름처럼
텅 빈 들판처럼 혈혈孑孑히……,
굽이굽이 한평생
얼마나 거친 길이었던가
눈멀어 살아온 세상
얼마나 곱고 즐거웠던지
귀먹었던 것들 다 들어도
얼마나 황홀하고 아련했던지,
빛나던 기억 한꺼번에 내려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사는
슬픈 꿈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삶이 아득한,
아침에 내린 눈 녹지도 않은
다저녁때
아내가 또 길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