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마음이 지워지다』(2021)

손톱 깎기

洪 海 里 2022. 4. 15. 03:17

손톱 깎기

치매행致梅行 · 5

 

洪 海 里

 

 

 

맑고 조용한 겨울날 오후

따스한 양지쪽에 나와 손톱을 깎습니다

슬며시 다가온 아내가 손을 내밉니다

손톱을 깎아 달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겨우내 내 손톱만 열심히 잘라냈지

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손곱도 없는데 휴지로 닦아내고 내민

가녀린 손가락마다

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

손톱깎이의 날카로운 양날이 내는 금속성

똑, 똑!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잘려나갑니다

함께 산 지 마흔다섯 해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 줍니다

파르르 떠는 여린 손가락

씀벅씀벅,

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 시집『치매행致梅行』(2015, 황금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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