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막걸리 詩 9편

洪 海 里 2022. 7. 20. 10:18

마시는 밥

- 막걸리

 

홍 해 리

 


막걸리는 밥이다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
하늘 보며 마시던 밥이다
물밥
사랑으로 마시고
눈물로 안주하는
한숨으로 마시고
절망으로 입을 닦던
막걸리는 밥이다
마시는 밥!
-  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막걸리

洪 海 里

 

 

텁텁한 탁배기 가득 따라서
한 동이 벌컥벌컥 들이켜면
뜬계집도 정이 들어 보쟁이는데
한오백년 가락으로 북이 우누나
가슴에 불이 붙어 온몸이 달아
모닥불로 타오르는 숯검정 사랑
꽹과리 장고 지잉지잉 징소리
한풀이 살풀이로 비잉빙 돌아서
상모도 열두 발로 어지러워라
탁배기 동이 위에 동동動動 하늘.

-  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막걸리

 

洪 海 里

 

할아버지 그을린 주름살 사이사이
시원스레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쑤욱쑥 솟아올라 몸 비비는 벼 포기들
떼개구리 놀고 있는 무논에 서서
잇사이로 털어내는 질박한 웃음소리
한여름 가마불에 타는 저 들녘
논두렁에 주저앉아 들이켜는 막걸리
녹색 융단 타고 나는 서녘 하늘끝.

- 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막걸리병

 

 洪 海 里

 

 

그녀를 제대로 맛보려면

부드러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몇 바퀴 돌리고 나서

꺼꾸로 세워 흔들어 주어라

'돌리고 돌리고 ---',

아직은 아니다, 다시

가슴을 살살 애무하여 혼절시키든가

주먹으로 몸통을 내리쳐 기절시켜야

이 처녀 얌전해진다

시집가기 전

죽은 듯 조용히 서 있어도

정중동靜中動,

성질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가슴속에 물폭탄이 들어 있어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고 만다

그러나 살살 다루면서

따르다 보면 이 처녀 어느새 물새가 되어

신랑의 품속으로 소리없이 날아든다

금세 발갛게, 벌겋게 달아오른 돌고래

한 마리

지상의 바다 속을 헤매고 있다.

- 독종(2012, 북인)

 

 

막걸리밥

 

洪 海 里

 

 

아기가 엄마 젖을 빨아 대듯이

 

막걸리를 마시는 나를 보고서

 

"선생님은 아기세요막걸리젖을 먹는!"

 

그 한마디에 막걸리는 밥이 된다.

- 월간 우리(2020. 11월호).

 

 

풋고추에 막걸리 한잔하며

 

洪 海 里

 

 

처음 열린 꽃다지 풋고추 몇 개 

날된장에 꾹꾹 찍어

막걸리를 마시네

 

나도 한때는 연하고 달달했지

어쩌다 독 오른 고추처럼 살았는지

죽을 줄 모르고 내달렸는지

 

삶이란

살다 보면 살아지는 대로

사라지는 것인가

 

솔개도 하늘을 날며

작은 그늘을 남기는데

막걸리 한잔할 사람이 없네

 

아파도 

아프다 않고 참아내던

독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인가

 

보잘것없는 꽃이 피고

아무도 모르는 새

열매를 맺어

 

접시에 자리잡은 고추를 보며

검붉게 익어

빨갛게 성숙한 가을을 그리네.

 

 

막걸리

 

洪 海 里

 

 

한때는 두 말도 가벼웠지

 

그러다 두 주전자가 되더니

 

어느새 두 병이 나를 흔드네

 

내일은 두 잔이면 딱이로고!

 

 

막걸리젖

 

洪 海 里

 

 

엄마 젖을 빨 듯

막걸리를 마시는 나는

팔십 아기가 아닌가

 

홍해리와 막걸리는

리리 ''자로 노는 동무로다

 

옆에서 박수치는

그대는 천사예요

 

복사꽃 피고, 연꽃 벙글고,

국화 피어나고, 매화가 벌어지는,

그 속에서 나는 마시리.

 

 

막걸리 한잔

 

洪 海 里

 

 

비 오는 주말 오후
홀로 앉아서

풋고추 날된장에
막걸리 한잔

한평생 가는 길도
이와 같아서

유행가 박자 따라
띄워 보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