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신작 소시집《우리詩》2022. 1월호(415호)

洪 海 里 2023. 9. 8. 16:24

[홍해리 신작 소시집]

 

 

♧ 푸른 하늘 무지개

 

늙바탕에 한무릎공부했다고

깔축없을 것이 어찌 없겠는가

세상 거충대충 살아도

파근하고 대근하기 마련 아닌가

 

나라진다 오련해진다고

징거매지 말거라

한평생 살다 보면

차탈피탈 톺아보게 되느니

 

더운 낮에 불 때고

추운 밤에 불 빼는

어리석은 짓거리 하지 마라

 

씨앗은 떨어져야 썩고

썩어야 사는 법

때 되면 싹 트고 열매 맺느니.

 

 

 

♧ 독거놀이

 

 

오늘도 혼자 앉아

물밥 한 병닭가슴살 안주해서

한 끼를 때우는데

 

겨우내 바삭바삭 가물다

모처럼 내리는 비에

귀 열고 속 아닌 속까지 적시니

 

마당가 청매 가지마다

꽃봉오리 뽀얗게 부풀고

나무 아래 부추와 돌나물도 숨이 가쁜데

 

대문을 열어 놓았나

현관문은 열려 있나

 

내다보아도 오는 사람 없고

빗소리만 귀를 씻어 주노니

 

유언을 하듯

유서를 쓰듯

내가 나를 벗어나는 해탈이요

내가 나를 버리려는 열반이네.

 

 

 

♧ 죽음竹音

 

 

죽음이란 말이 왜 그리 무거운가

죽음은 대나무가 내는 소리가 아닌가

한 칸 한 칸 쌓아올린 빈 탑마다

세상의 소리를 다 모았으니

그 얼마나 황홀한 궁전인가

날마다 펼치는 궁정음악회

우주의 소리란 소리

청아하고 애절한 소리를 다 모아

들려주는 합창이니

죽음이란 얼마나 눈물겨운 공양이요 공연인가

백조가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울음이 아닌가

우리도 기왕에 한 말씀 남기려면

대나무가 우는 소리가 어떨지

땅 속으로는커녕 대처럼 옆으로 뻗지도 못하고

무한천공으로 치솟아 보지도 못했으니

언제 세상소리 다 모아

땅과 하늘을 이어볼 수 있겠는가

는 죽은 후에도 모든 소릴 뽑아내니

우리가 죽는다는 것도

죽은 대아무의 소리를 따를 일이 아닐런가

마당가 몇 그루 오죽烏竹

한겨울에 얼어죽었다

봄이면 되살아나는 걸 보며

죽음학을 해마다 펼치게 되네.

 

 

 

♧ 자연법

 

 

몸 소리치는 대로 마음 대답하고

마음 부르는 대로 몸 응대하니

 

춤추고 노래하라

기뻐하고 슬퍼하라

 

마음 가는 대로 몸 따라 가고

몸 이끄는 대로 마음 뒤따르니

 

나무를 보라 새를 보라

구름 없는 청산 얼마나 외로운가

 

마음 떠난 몸 어디로 가나

몸 잃은 마음 어디서 떠도나

 

몸과 마음마음과 몸

응달진 마음자리 쏟아지는 가을볕 아닌가.

 

 

 

[시작노트]

 

 

나의 시는 늘 목마르다

나의 는 늘 배가 고프다

 

비오고 바람 불고 눈보라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해가 가고

겨울 봄 여름 가을이 와도

 

나의 시는 늘 배가 슬프다

나의 는 늘 목이 아프다

 

    * 월간 우리 2022 1월호(통권41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