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우리詩》2022. 12월호 '홍해리 신작 소시집'에서

洪 海 里 2024. 1. 22. 15:28

 

 나는 날마다 무덤을 짓는다

 

해가 지면

문을 닫고 하루를 접는다

 

하루는 또 하나의 종점

나는 하나의 무덤을 짓는다

 

문 연 채 죽는 것이 싫어

저녁이면 대문부터 창문까지 닫고

 

다 걸어 잠근 고립무원의

지상낙원을 만드노니

 

둘이 살다, , , 다섯,

이제는 다들 떠나가고

 

나만 혼자, 홀로, 살다보니

집이 천국의 무덤이 되었다.

 

 

 단현斷絃

 

줄 하나 끊어지니

천하에 소리가 나지 않네

 

내 귀가 먹은 것인지

내일 없는 어제가 가슴을 치니

 

잠이 안 와 괴롭고

잠들면 꿈으로 곤비하네

 

말이 안 되는 세상이라도

물 흐르듯

바람 일 듯

 

영혼은 이제 유목민으로나

두 집 건너 살아라

산산 강강 살아라

 

그렇게나 가야지

노량으로 가야지.

 

 

 적멸보궁

 

밤새껏 폭설이 내린

이른 아침

부산한 고요의 투명함

한 마리 까치 소리에

,

눈이 떨어져 내리는

영원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세상!

 

 

 겨울밤 소네트

 

창밖에 눈이 소복이 내린

한겨울 밤

화로에 묻은 고구마

호호 불고 껍질을 벗길 때

입보다 먼저 눈으로 듣던

침 넘어가는 소리

손자에게 건네는 노란 몸뚱이,

눈을 털고

떠 온 동치미 국물,

, 시원타!”

 

유년의 고향집에

소리 없는 시 한 편이

한 장의 그림으로

추억 속에 놀고 있네.

 

 

 불면증

 

수천 마리 흰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도록 가고 있었다

 

수만 마리 꽃뱀이 꼬리에 꼬리를 잇고

날새도록 가고 있었다

 

땅 끝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내닫고 있었다

 

서둘러 저무는 동짓달 기나긴 밤

불면 날아가 버릴 가벼운 잠이여!

 

 

 의 기원

 

난은 하늘에 사는 새였거니

해오라비 갈매기 방울새 제비였거니

어쩌다 지상으로 추락했는가

 

하늘을 날다 지쳤는가

지상이 그리 그리웠는가

어찌 땅으로 내려왔는가

 

나무에 내려앉기도 하고

바위에 걸치기도 하고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느니

 

날개는 꽃이 되고

발은 뿌리가 되고

몸은 잎이 되었느니

 

새들이 하늘에 쓴 시

땅에 내려

꽃이 되었다

 

난꽃은 새들이 쓴 시가 아닌가

새들이 추는 푸른 춤이 아닌가

새들이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 월간 우리 12 402호에서

                      * 사진 : 한란寒蘭

                      - 김창집 님의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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