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귀가 지쳤다

洪 海 里 2024. 2. 13. 11:00

귀가 지쳤다

洪 海 里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까지

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

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

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

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

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

이제 귀가 운다.

-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 시 해설

감각을 받아들이는 눈은 뜰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어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귀는 늘 열려 있어서 무의식 상태가 아니면 소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를 줄창 듣기만하는 귀의 수동적 한계성을 말한다. 안 들을 소리를 듣고서 이물질 같아서 귀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 대책 없어서 그럴 만도 하단다.

귀의 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 온갖 ‘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 수시로 듣게 되니까 귀도 지친 것이다. 동정을 해 본다. ‘하루도 쉴 새 없이 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 이 가혹하여 ‘이제 귀가 운다’ 고 듣는 기능의 귀가 소리의 영역까지 와서 울게 되었다는 시인의 말.

홍해리 시인은 「귀가 지쳤다」는 시에 이어서 「귀가 운다」라는 시를 썼다.

 

귀도 외로우면/ 속이 비어 울고 싶어지는가//

귓속에 바람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는지//

밤낮없이 소리춤을 추며 우니/ 가렵고 간지러워//

소리는 들리는데/ 의미는 오지 않는다

- 홍해리 시인, 「귀가 운다」 전문

 

시인은 ‘귀’를 소재로 쓴 시를 통하여 현대사회에서 무의미하게 들려오는 소음과 외로움을 보여주었고, 귀가 큰 옛 성인의 고뇌까지도 간파하셨을 것 같다.

- <뉴스 경남> 2024.07.01. 조승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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