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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화요정기법회 법문 /불기 2568년 11월 5일

洪 海 里 2025. 1. 30. 19:24
봉은사 화요정기법회 법문 / 공일스님

[불기 2568년 11월 5일 화요정기법회]


오늘 법회 시작하기 전에 시 한 편 읽어드리겠습니다.

홍해리 시인의 ‘가을 들녘에 서서’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 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이 시인은 '가을 들녘에 서서' 우리 내면의 아름다움, 황홀함을

다시 한 번 깊이 보려면 자기 자신을 텅 비워 내려놓아야 한다 생각한 것 같아요.

서울청 근처 광화문일대는 각종 행사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집회가 많이 있어서 경찰관분들 많이 바쁘실 듯합니다.
우리 불자님들 '가을 들녘에 서서' 내 삶을, 내 생각을 비워내면서 우리 내면을,

또 바깥 세상도, 또 그렇게 막 여러 바람들이 불어오는 것에
덜 부대끼면서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유해 보았습니다.

부처님은 누구신가?
오늘은 드디어 10번째 ‘불(佛, buddha)’입니다.
- 이제까지 배운 부처님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내가 부처님을 어떻게 모실까’ 하는 입장에서 한 목소리로 읽을게요.
-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
한자의 자획을 나누는 것을 ‘파자한다’고 얘기하는데

파자해서 보면 한자 이해가 무척 쉽게 됩니다.
불(佛)이라는 글자를 파자하면 ‘사람 인변' 옆에

달러 표시랑 비슷한 글자가 있는데 ‘아니 불’자의 이체예요.
그러니까 불(佛), 이 글자는 한자를 쪼개 보면
‘사람이 아니다 ’ 이런 의미가 되는거예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은 보통 인륜을 저버리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사람 같지도 않다란 표현으로 쓰이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뛰어넘어서는 어떤 존재를 뜻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고행, 수행은 우리의 영역을 넘어서 있기 때문에

불(佛)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제가 드린 자료 보겠습니다.
부처님의 10번째 이름 ‘불타’는 중국(진나라)에서는

‘아는 자’ 그래서 ‘지자(知者)’라고 한다.
<대지도론 2권>에 나온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을 짚고 가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 이런 식으로 이해하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읽은 ‘대지도론 2권’에는 어떻게 돼 있죠? ‘과거 미래 현재’
부처님은, 또 부처님의 말씀을 해석해 놓은 이 원문들을 천천히 따져보면

우리가 이런 시간을 갖지 않아서 그냥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과거 현재 미래’,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에요.
그러나 ‘과거 미래 현재’라고 얘기할 때는 '지금, 여기'가 중심인데,

'업이 쌓여온 이 시간까지의 지금 여기'와
'지금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무량한 시간으로 흘러가는 것들의 한 중간에 있는 지금 여기'
이렇게 구분, 설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왜 '지금'을 설정하느냐 하면 '수행의 과제가 지금 여기에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불교에서 이때까지 저질러 왔던 많은 잘못도 있지만

앞으로 저지를 가능성에 대한 것들을 같이 묶어서 참회라 하는 것이죠.
- 전 이런 걸 발견할 때, 이런 걸 새삼 느낄 때마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항상 매순간 최대의 노력을 하면서 깨어 있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한다 이런 생각을 해봐요.

계속 이어나가 볼게요. 그래서 과거 미래 현재에 중생의 수요와 비중생의 수요,

항상암과 무상함 등 온갖 법을 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돼 있어요.
지금 우리가 읽어보는 이 구절들,
‘중생의 수요와 비중생의 수요, 항상함과 항상하지 아니함’
불과 이 구절 4개의 개념을 제시했지만 이것은 일체 만물에 대한 분별이라고도 구분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 부처님의 궁극의 지혜는, 부처님의 깨달음은 ‘분별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때의 설명은 부처님은 우리 일체 중생들을 다 알고

한 사람 한 사람, 각 사람마다 갖고 있는 전생의 내력을 아는,
무척 섬세하게 알아나가고 계시는 분이라는 거죠.
(아직 부처님 만나지 않고, 부처님 수기 받은 적 없어서

지금 대답 안 하신 것 같은데 😅) 우리가 수행 열심히 하면 그럴 때가 있을지도 몰라요.
부처님이 누구에게 수기를 줬다 할 때마다

‘부처님은 각 사람의 근기가 어떤지에 대한 섬세한 분별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지도론 10권> 3세(과거, 미래, 현재)가 요동하고 요동치 않음과

다함과 다하지 않는 법을 보리수 밑에서 모두 아셨다.
그래서 불이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보리수(지혜의 나무) 아래로 우리를 초청해 주는 얘기입니다.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분은 그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수할 때
그 보리수 아래로 우리를 불러 줄 것이고,
보리수 아래 우리가 도착하면 그 지혜의 나무에 달린 열매를,
우리가 심고 거두고 가꾸지 않았지만 그 열매를 우리가 향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지도론 21권>에는 이런 구절로 또 시작해요.
무슨 일 때문에 자신을 이익되게 함이 한량이 없고,

다시 능히 남을 이익되게 함이 한량이 없는가 이 질문을 해요.
불교에 자주 나오는 ‘자리이타’ 얘기이죠.
이는 부처님이 온갖 지혜(一切智慧)를 성취하셨기 때문이라 나와요.
제가 처음에 얘기할 때 아는 자(知)였는데 이때 이 구절에 와서는 '지智'가 되죠.
파자해 보면 知 밑에 (日)자를 쓴거예요. 아는 것이란 온갖 것을 다 안다는 것이예요
올바른 이 앎이 우리의 무명 어둠을 걷어내는 앎으로 될 때는
이걸 지혜라고 얘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때 아는 자는 내 번뇌까지도 내 죄악까지도

내 어둠까지도 아는 것이고 부처님의, (우리가 도달해야 될) 지혜는
알 '지'가 아니라 지혜 '지'자가 된다는 것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 구절도 읽어드릴게요.

부처님의 법은 청정하고 정명하고 특출하고 좋은 말씀이라
이번 생에 부처님 말씀을 따라 살게 된다면 그 가피로 공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고
(부처님이) 지시하고 가리켜서 보여주고 열어서 일깨워 주고

개발(開發)하시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마음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경전을 읽어나가다가 보면 우리로 하여금 지혜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지혜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이 대지도론을 읽는 순간만큼은

이전보다 지혜로워졌다라고 선언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마음의 힘이 커져요.

우리 낙심하지 않고 부처님 따라 살 수 있는 것과
이 세상의 번잡함에 어쩌다 휘말렸다 하더라도
다시 부처님의 자리에 오는 것, 이거는 마음에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에 얘기해 주거든요.
부처님을 염하면 염불이 되는 거고요.

법을 염하면 염법이 돼요. (여시염법(如是念法))
이렇게 염법을 하면 두려움과 무서움,

번뇌의 구체적인 현상들이 다 사라진다라고 얘기해 주는 거예요.
아까 어느 분이 ‘사람들 만나면 얼굴이 좀 어두워 보입니다.’라고 하셨어요.
번뇌가 많아서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부처님의 제자들은

그럴 때마다 마음의 힘을 키워서, 부처님의 지혜를 본받아서 이런 두려움 무서움을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발원을 세워야 된다고 하는 것이

오늘 ‘부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이야기의 끝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숨 깊이 들이마시면서 마음 고요하게 하시고)
부처님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면서 마치겠습니다.
☺ 어제 퇴근 이후에야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출근길에 올립니다!

법문 내용 요약도 내려놓고 비워야 하나 매번(갈수록) 한없이 길어지게 되네요 🤭
여유 있으실 때 읽어보시길.. 여러 번 읽다보면

공일스님 육성지원되는 느낌나실 거예요. ㅎ 좋은날 되세요.
🙏🏻 서울청 포교부장 조은경 합장

- https://cafe.daum.net/knpbuddha <경찰불교>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