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문학평론> 高大 詩人 100年史/최동호

洪 海 里 2005. 10. 11. 11:18

고대 시인 100년사

 

최동호(시인.문학평론가)

1. 서 설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이다. 1905년 ‘교육구국’을 창학 이념으로 건립된 보성전문으로부터 시작하여 민족의 해방의 해인 1945년 고려대학교로 승격한 모교는 2005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고려대학교는 그동안의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오늘의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최대의 사학으로 성장하였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옛말을 실증하듯 우뚝 서 있는 것이 고려대학교이다.
고려대학교의 현대시 100년사를 지금의 시점에서 논할 때, 우선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1945년 고려대학교가 종합대학 승격 이후 문과대학에 국문과와 영문과가 창설되어었으므로 본격적으로 문학을 교육하기 시작한 것은 60년에 이른다고 할 것이며, 고려대학교의 현대시사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60년사라는 점이다.
지난 60년 동안 고려대학교는 70명이 넘는 시인들을 문단에 배출하여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 크게 약진하여 한국 문단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은 문단 내외에 공인된 사실이다.
고려대학교 현대시사를 여기서는 대체로 다음 네 단계로 나누어서 기술할 것이다.

첫째 단계 태동기(1945 - 1959) 해방의 격동과 고대시단의 태동기
둘째 단계 형성기(1960 - 1979) 조국 근대화와 고대시단의 형성기
셋째 단계 모색기(1980 - 1989) 민주화 투쟁과 고대시단의 모색기
넷째 단계 약진기(1990 - 2004) 정보화 시대와 고대시단의 약진기

위의 단계 구분은 고대 시단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일차적으로 고려한 것이기는 하지만, 고려대 출신 시인들의 등단 진출도 깊이 고려한 결과이다.
필자는 고려대 현대시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문단적 유파보다는 문학적 성과에 입각하여 중립적 시각에서 사실을 서술할 것이며, 등단 사실을 두루 언급하되 시집을 간행하는 등의 지속적으로 활동한 시인들의 작품을 가급적 다양하게 인용하여 시적 특색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서술 방법을 취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문단 활동 중인 시인들을 중심으로 기술해 나갈 것이며 90년대 이후 신진 시인들에 대해서도 그 특성과 가능성들을 집약시켜 서술할 것이다.

2. 태동기의 고대시단

고대 시단의 태동기는 1945년부터 1959년까지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보성전문학교를 해산하고 미군정청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한 후 고려대학교 국문과와 영문과가 정식으로 설치되면서 고대의 문학은 본격적인 출범을 맞게 된다. 영문과의 이인수 교수, 국문과의 구자균, 조지훈 교수는 고려대 문학의 상징적인 기둥이다. 특히 조지훈(1920~1948) 교수는 1939년 《문장》지를 통해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하여 시인으로서 논객으로서 활발한 문단 활동을 전개한 바 있었으며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간행한 ꡔ청록집ꡕ(1948)은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를 잇는 문학사적 의미를 갖는 시집이었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丹靑 풍경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玉座 위엔 如意珠 희롱하는 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들어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마는 푸르른 하늘 밑 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소리도 없었다. 品石 옆에는 正一品 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르량이면 봉황새야 九天에 呼哭하리라.
- 「鳳凰愁」, 전문

「승무」와 「고사(古寺)」 등의 선감각의 시들로 알려진 조지훈의 위의 시 「봉황수」에서 우리는 나라 잃은 백성의 우국충정을 읽을 수 있는데, 이는 고대 건학 이념과도 통하는 것으로서 이후 고대 출신 문인들의 지향점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대 출신의 시단 진출은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門」으로 입선한 김종길(1926~)로부터 비롯된다. 영문과 출신의 김종길은 영문학과 한학을 아울러 겸비한 시인으로서 신선한 이미지즘과 한학의 절제를 시적 방법으로 구사하여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였다. 김종길이 자신의 이러한 감성을 독자적으로 펼치면서 문단적 위치를 확고히 한 것은 1955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성탄제」부터이다.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성탄제」, 첫 부분

이 작품에서 김종길은 산수유 열매처럼 혈액 속으로 녹아든 육친애를 성공적으로 시화하고 있는데 이후 그의 시는 유가적 절제와 영문학의 이미지즘을 조화시켜 대가적 경지에 이른다. 시집 ꡔ성탄제ꡕ(1969), ꡔ하회에서ꡕ(1977), ꡔ황사현상ꡕ(1986), ꡔ김종길 시선집ꡕ(1986) 등은 그의 시가 반세기가 넘도록 일관된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는 물론 고려대학교 시사에서 중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 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化粧)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 「고고(孤高)」, 전문

김종길의 「고고」는 고대의 시정신이 선비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인간으로서도 품격을 지녀야 함을 일러주는 상징적인 시다.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교가의 한 구절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지조를 지켜나가는 고대인의 지조를 뜻한다. 김종길의 이러한 선비정신은 조지훈의 맥을 이은 것이자 후배 시인들에게로 이어져나가는 고대시단의 도도한 정신사적 맥을 확립시킨 것이라 하겠다.
민족적 정한을 노래한 천재 시인으로 불리던 박재삼(1933~1997)은 1953년 《문예》에 시조 「강물에서」가 초회 추천되고 1955년 《현대문학》에 「정적」을 추천 완료하여 등단하였다. 1962년 간행된 첫 시집 ꡔ춘향이 마음ꡕ은 한국적 정한을 토착적 언어로 노래한 대표적인 시집으로 평가되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빛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울음이 타는 가을江」, 첫 부분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녹여내는 박재삼의 시적 솜씨는 그가 천부적인 시인임을 입증한다. ꡔ뜨거운 달ꡕ(1979), ꡔ대관령 근처ꡕ(1985), ꡔ찬란한 미지수ꡕ(1986), ꡔ해와 달의 궤적ꡕ(1990), ꡔ허무에 갇혀ꡕ(1993), ꡔ다시 그리움으로ꡕ(1996) 등의 시집들은 박재삼이 작고 직전까지 그의 필생의 업인 시작을 계속했음을 보여 준다.
박희진(1931~)은 1955년 《문학예술》에 「무제」, 「관세음상에서」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있겠어요
눈을 꼬옥 감아야 되겠지요
삼가 어지러운 마음을 모아
그리고 잊었던
당신의 모습만을 그리어 보겠어요
시드른 나무에 봄물이 오르듯이
제 야윈 가슴에 그리움이 고이면
이 눈이 얼굴이
다시 활활 타오르지요
저는 그러나 울지 못해요
저에겐 세상이 너무 밝드군요
그래서 이렇게 어지러운 모양얘요
저는 매일
추악해 지는 얼굴을 보고
간신히 살아 있는
자기의 목숨을 숨쉬고 있지요
-「무제」, 첫 부분

빛과 어둠, 육신과 영혼, 지옥과 천국 등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양자간의 갈등을 넘어서는 한국적 형이상시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한 것이 박희진의 시세계이다. ꡔ실내악ꡕ(1960), ꡔ청동시대ꡕ(1965), ꡔ빛과 어둠 사이에서ꡕ(1976), ꡔ바다, 만세 바다ꡕ(1987) 등이 그의 지속적인 모색을 대변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는 또한 우리말로 가능한 거의 모든 시행을 추구하여 1행시, 4행시, 14행시, 장시 등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였으며, ꡔ사행시 사백 수ꡕ(2000), ꡔ1행시 980수와 17자시 730수, 기타ꡕ(2003) 등은 이러한 시적 시도의 성과물이다.
박희진과 같은 시기인 1965년 민재식(1932~)은 《문학예술》에 「속죄양」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繡놓은 한 여름 목장 풍경 위에
만국지도가 어지러웁다

부딪치는 두 나라 사이
베에링 海峽엔 버큼이 인다

아라스카의 손은 몹씨 여위었구나
캄챠카의 서슬 돋친 뿔이어
게다가 불쑥 내미는 山東半島의 코가 무서워
祖國- 잊혀지지 않는 노래로 흘러나오는
祖國은 한사코
太平洋 울목 구석지로 구석지로만 움츠러든다

모두다 말없이 앉아 뿜는 희푸른 연기 속으로
외떨어진 大洋洲의 망우수를 본다
제 마다 가슴은 쿵쿵 뛰는데
어쩌자고 죽음을 생각해야 되는가
청년들은 옥수수만치 괴로웁구나
(옥수수는 이빨이 여물기도 전에 수염이 났다)
-「속죄양」, 첫 부분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풍자적으로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 이 시는 6․25 동란에 의한 참상과 민족적 희생을 그리고 있다. 동세대를 속죄양으로 지칭하고 있는 민재식의 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이지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천성적 정한을 노래한 박재삼과 대비된다고 하겠다.
1955년 인태성(1933~)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화부」로 입선하였고, 1956년 《문학예술》에 「해바라기」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59년에는 김재원(1939~)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누가 밖에서 부르고 있다.

모두 멀리 하고
나 혼자 돌아 앉은 房 속에
저건 누구의 음성인가.

나는 지금 아무 데고 갈 수 없다.
사실은 벌써 딴 곳에 가 있었다.
귀를 막고 엎드린 房 속에선
문밖에 일어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은 다른 곳에서
내가 저지르는 일들이다.

나는 어느 로오타리에서처럼
길을 잘못 들어
이 房에 오게 된 한 마리 짐승.
-「문」, 첫 부분

김재원의 활달한 언어 구사와 적확한 이미지는 그를 촉망되는 신예 시인으로 평가하기에 족한 것이었으나, 《소설문학》, 《여원》과 같은 잡지사 경영 등으로 인해 그의 시단 활동은 지속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상의 시인들이 고대 시단의 첫 장을 장식하는데, 이를 태동기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은 영문학과 한학의 균형과 절제를 바탕으로 반세기 넘도록 시작을 계속하여 원로 대가의 경지에 오른 김종길의 등단과 더불어 전통적 서정의 박재삼, 한국적 형이상 세계와 시형식의 개척자 박희진 등이 이후에도 한국 시단의 중심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가 지닌 역사적 의미는 충분한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3. 형성기의 고대 시단

고대 시단에서 형성기는 1960년부터 1979년까지라고 할 수 있다. 4․19 혁명과 함께 개막된 60년대는 태동기에 이어 고대 시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이다. 이후 고대 시단을 이끌어나갈 정진규, 오탁번, 이성선, 김명인, 최동호, 최승자 등을 비롯하여 20여 명의 시인이 대거 등단한 연대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다.
1960년 4월 18일 고대생들의 국회의사당 앞 의거는 4․19 혁명을 촉발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조지훈은 교정에 세워진 〈4․18 기념탑〉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썼다.

〈自由! 너 영원한 活火山이여!〉

邪惡과 不義에 항거하여
압제의 사슬을 끊고
분노의 불길을 터뜨린
아! 1960년 4월 18일
천지를 뒤흔든 正義의 喊聲을 새겨
그 날의 분화구 여기에 돌을 세운다.

조지훈의 비문은 이후 부정과 억압에 항거하는 모든 고대인의 표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출신 시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지표가 된 문구다.
형성기 시단의 첫 출발은 정진규(1939~)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나팔抒情」이 당선되어 새로운 시대의 나팔수로 등단하게 된다.

兵舍의 새벽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우리네 가슴 속에 한번쯤 울렸어야할
쟁쟁한 새벽의 音聲.

밤의 이야기가 맺힌 이슬들을 거두며 열리어오는 하늘 밑
금방 發花하는 꽃의 心臟 한복판에서
핏물이 소용도는 肉聲으로 고여오는 것.

奇蹟을 보드키 그런 꽃을 보고 있으면
넘쳐나는 微笑를 하며 손을 흔들며
왁자히 달려가는 내가 되고 말텐데
참으로 기달린 당신의
모습이 질게 그어진 生命의 가슴 그늘
안으로 짓씹는 忍苦의 過剩을 그대로 밀쳐두고
지금껏 높아만가는 바람 소리여.
- 「나팔抒情」, 첫 부분

위의 시에서 읽을 수 있듯 화려하고 섬세한 수사법을 바탕으로 심층적 의식의 탐색으로 나아가는 것은 정진규 초기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60년 중반 이후 시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의 괴리를 경험하면서 심각한 갈등을 드러냈고, 이를 극복하고자 1970년대 후반부의 산문시행으로 나아갔다. 이를 통해 그의 시는 개인의식에서 집단의식을 포괄하는 계기를 얻어 확고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시집 ꡔ마른 수수깡의 평화ꡕ(1966), ꡔ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ꡕ(1977), ꡔ연필로 쓰기ꡕ(1986), ꡔ몸시ꡕ(1994), ꡔ알시ꡕ(1997), ꡔ도둑이 다녀가셨다ꡕ(2000) 등과 시론집 ꡔ한국현대시산고ꡕ(1983), ꡔ질문과 과녁ꡕ(2003) 등을 간행하고 월간 《현대시학》 주간으로 활동하는 등 정진규는 시와 시단 활동에 있어서 문단의 중심에 있다고 하겠다.
정진규에 뒤이어 1961년 박근영(1931~)이 《자유문학》에 「나목」 등으로 등단하고 ꡔ가난한 축가ꡕ(1964), ꡔ빛의 층계ꡕ(1971), ꡔ소묘․기타ꡕ(1980), ꡔ잎이 질 무렵ꡕ(1982) 등을 간행하였으며, 이수화(1939~)가 《현대문학》에 「바람의 노래」 등으로 등단하여 시집 ꡔ모창사비극ꡕ(1982), ꡔ은유집ꡕ(1987) 등을 간행하였으며, 범대순(1930~)이 조지훈의 추천사를 얻어 시집 ꡔ흑인 고수 루이의 북ꡕ(1965)을 통해 등단하였다. 범대순은 ꡔ연가 Ⅰ, Ⅱꡕ(1971), ꡔ이방에서 노자를 읽다ꡕ(1986), ꡔ기승전결ꡕ(1993), ꡔ백의 세계를 보는 하나의 눈ꡕ(1994), ꡔ유아원에서ꡕ(1994) 등을 발간하여 왕성한 창작열을 과시하였다.

그리움은 바람의
목숨일러라.

호롱불을 밝혀 든
園丁의 不眠 속에
바람은
果實이 은밀한 숨결로
生命의
허전한 바래움을 느끼는
刹那마다 싱싱한
살내음을 뿜어
잠잠히 幽玄 속으로
제 몸을 가누는
없음 중의 가장 종요로운
목숨의
觸手.
- 「바람의 노래」, 중간 부분

이수화의 「바람의 노래」는 언어의 예민한 촉수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다만 이 섬세한 언어가 지나치게 유현한 세계로 향할 때 그이 시적 세계는 좁혀진 자기 탐구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위험을 지니게 된다.
60년대 고대 시단의 화려한 축제는 오탁번(1943~)의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작된다. 오탁번은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가 당선되고 시에 이어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어 신춘문예 3개 부문을 석권하는 기록을 남긴다.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純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原始林)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石炭)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原始林) 아아 원시림(原始林)
-「순은이 빛나는 아침에」, 첫 부분

위의 시에서 보듯이 오탁번의 시적 특징은 김기림, 정지용 등에 의해 개간되기 시작한 주지적이고 지성적인 시의 전통을 더욱 크게 발전시킨 언어적 감각의 확장에 있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지성적 교차는 서정적 울림을 강화시켜 주는 계기가 되어 그의 시적 신선감을 한층 높여 준다. 오탁번은 시집 ꡔ아침의 예언ꡕ(1973) 이후 70년대를 넘어서 80년대 중반까지 ꡔ처형의 땅ꡕ(1974), ꡔ새와 십자가ꡕ(1978), ꡔ저녁연기ꡕ(1985) 등의 소설집을 통해 소설에 주력하는 듯하지만 이후 시작에 전념하여 ꡔ너무 많은 것 가운데 하나ꡕ(1985), ꡔ생각나지 않는 꿈ꡕ(1991), ꡔ겨울강ꡕ(1994) 등을 통해 시단의 중진으로 자리매김한다.
오탁번에 이어 조당래(1927~)가 1966년 《문학춘추》로 정재우(1946~)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선로여 우리들의 평화는」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지만 문단 활동이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홍해리(1942~)는 1969년 시집 『投網圖』를 간행하여 등단하고 『花史記』(1975), 『무교동』(1976), 『대추꽃 초록빛』(1987), 『은자의 북』(1992), 『애란』((1998) 등을 간행하여 지속적인 활동을 하였다.

종일 피릴 불어도
노래 한 가락 살아나지 않는다.

천년 피먹은 가락
그리 쉽게야 울리야만
구름장만 날리는
해안선의 파돗소리.

물거품 말아 올려 구름 띄우고
바닷가운데 흔들리는 소금 한 말
가슴으로 속가슴으로
목아지를 매어달리는 빛살
천년 서라벌의 나뭇이파리.
-「선화공주」, 첫 부분

신라 시대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을 삼고 있는 위의 시는 선화공주의 간절한 사랑을 피리소리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비유적 이미지들이 사랑의 절실함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서정시의 기본 어법에 충실한 작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후 그의 시는 더욱 육감적인 언어에 기울어지는데 이로 인해 그 시적 주관성이 심화된다.
1970년 김상협이 6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김상협 총장은 취임사에서 ‘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전인적 인간의 형성’을 고대생에게 기대되는 인간상으로 제시하였고, 이는 교내외에 메아리치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민족의 대학’으로서 고대의 전통은 김상협 총장에 의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오로지 민족의 힘에 의한 대학
민족의 힘을 위한 대학
오로지 민간의 힘에 의한 대학
민간의 힘을 위한 대학

김상협 총장은 새 시대의 지도자 상으로 ‘지성과 야성의 조화’를 고대생에게 제시했다. ‘지성과 야성’은 한국의 대학이 지향하는 이상적 목표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고려대학교의 교육 목표로 한국적 상황을 헤쳐나가는 동시에 과학기술 문명에 적응하는 원숙한 전인적 인간상을 제시한 것이다.
고대의 교육 목표와 인간상이 이처럼 명료하게 제시된 것은 고대 전통의 큰 줄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20세기 초반의 ‘교육 구국’이라는 명제가 70년대 ‘지성과 야성의 조화’로 나아간 것은 한국의 사회 문화적 성숙에 고려대학교가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뜻하며, 이러한 교육 목표는 고대 시단의 형성과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1970년 계간 《문화비평》을 통하여 등단한 이성선(1941~2001)은 1972년 월간 《시문학》에 추천이 완료되어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밤마다 그는
반은 가리고 반은 드러난
處容 아내, 고운 가랑이
달 솟는 海峽에
내려가

병풍을 치고
신기롭게 악기소리 열리는
병풍을 치고,

꽃나무에 내려
꽃잎을 열고 들여다보면
밤중에 그는 미쳐 있을까
-「시인의 병풍」, 첫 부분

위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관능적 세계의 탐미적 추구에서 비롯된 그의 시는 여기서 나아가 자연 친화와 교감 속에서 인생의 모습과 원리를 발견하려는 존재론적 형이상 세계를 탐구하는 정신주의적 세계로 발전된다. 첫 시집 ꡔ시인의 병풍ꡕ(1974)을 간행한 후 ꡔ하늘문 두드리며ꡕ(1977), ꡔ밧줄ꡕ(1982), ꡔ별이 비치는 지붕ꡕ(1987), ꡔ향기나는 밤ꡕ(1991), ꡔ벌레시인ꡕ(1994), ꡔ산시ꡕ(1999) 그리고 마지막 시집 ꡔ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ꡕ(2000) 등을 남겼다.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 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미시령 노을」, 전문

극소의 것에서 극대로 나아가는 기미를 포착한 위의 시는 선시풍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극단으로 밀고나아간 예라고 할 것이다. 특히 이성선의 시는 최동호의 실천비평과 결합되어 90년대 시단에 정신주의를 하나의 유파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바 있다.
1971년 이명자(1947~)가 《현대시학》에 「목공」으로 추천되어 등단하였으며, 시집 ꡔ신반야경ꡕ(1973), ꡔ별제ꡕ(1989) 등을 발간하여 정갈한 언어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예민하게 타오르는 생솔가지
나부끼는 불빛 사이로
木工의 바른 손이 문을 두드린다.
아득히 열리는 私邸의 門前에서
젊은 木工의 다른 손은 흔들리고 있었다.

길가에 나간 아이가
죽어서 왔다.
눈 꼭 감은, 어린 날개 달린
아이의 흰 볼 만큼
죽음이 새로 아름답다.
- 「목공」, 첫 부분

위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정갈한 시어들은 그가 섬세한 언어 미학의 탐구자라는 것을 알려 준다. 고대 시단에서 이명자의 시적 의미는 그가 여성시의 첫 장을 열었다는 점이다. 70년대 이명자에서 시작된 여성시는 80년대 최승자, 90년대 최정례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는 중요성을 갖는다.
오탁번이 60년대 고대 시단의 한 중심이었다면 김명인(1946~)은 70년대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73년 김명인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출항제」로 당선하여 시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그의 시적 노력과 성과는 고대 시단의 중추적 시인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겨울의 부두에서 떠난다.
오랜 碇泊의 닻을 올리고
순풍을 비는 출항제,
부두의 창고 어둑한 그늘에 묻혀 남몰래 우는
내 목숨같던 愛人이여.
오오, 무수히 용서하라 울면서 지켜보는 時代여.
지난 봄 갈 할것없이 우리들은 성실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
맨 몸으로 떠나는 날의 새벽,
눈 내리는 世界.
우리들의 航海日誌 속 뜨거운 체험으로 끼워 넣으며
불손했고 쓰라렸던 사람을 덮는다.
감동도 없이 붙들어 지킬 신념도 없이
한 때 깊이 빠져가던 우리들의 眈溺,
일상의 食卓과 우울한 밤의 비비적거림이
한갖 口舌의 불티처럼 꺼져가고 있다.
- 「출항제」, 첫 부분

남루하고 비천한 삶의 시대에 대한 누추한 고백을 던지고 새로운 바다로 나아가려는 김명인의 시는 이후 ꡔ동두천ꡕ(1979), ꡔ물 건너는 사람ꡕ(1982), ꡔ머나먼 곳 스와니ꡕ(1988), ꡔ푸른 강아지와 놀다ꡕ(1994), ꡔ바닷가의 장례ꡕ(1997), ꡔ길의 침묵ꡕ(1999), ꡔ바다의 아코디언ꡕ(2002) 등으로 이어지면서 변방에서 떠도는 사람들의 질긴 생의 집념과 투박하지만 인정에 넘치는 세계를 독자적으로 형상화하여 그로 하여금 동세대의 시인들 가운데 대표적인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1975년 이종욱(1945~)이 《창작과비평》에 「이제 다아 보여요」 등을 발표하고 1976년에는 윤강로가 《심상》에 시 「발상법」, 「불꽃놀이」 등을 통해 등단하였다. 윤강로(1938~)는 시집 ꡔ불꽃놀이ꡕ(1979), ꡔ피피피 새가 운다ꡕ(1985) 등을 간행하였다.

가시돋힌 선인장도
화분에 정착하여
꽃피우는데

껍질이 알맹이듯
껍질이 전부인
늘상의


껍질이나마
피 통하여라
- 「오늘의 무게」, 중간 부분

껍질이나마 피가 통하기를 바라는 일상 속의 또 다른 나의 갱신을 위하여 쓰여진 것이 윤강로의 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지속적인 시작 활동을 통해 일상을 벗어나려는 자신의 시적 의지를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1976년 최동호(1948~)는 시집 ꡔ황사바람ꡕ을 간행하여 시단에 등단했다. 그는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80년대에 왕성한 비평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첫 시집에 이어 ꡔ아침책상ꡕ(1989), ꡔ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ꡕ(1995), ꡔ공놀이하는 달마ꡕ(2002) 등을 통해 명상적이며 불교적인 선취의 시를 심화시켜 이성선 등과 90년대 정신주의 시의 이론적 중심이 되었다.

빈 숲의 딱따구리 소리여
움직일 곳 바이 없구나

오막살이 집
구부린

벌레 한 마리
- 「벌레」, 전문

이 시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침묵의 언어이다. 행간의 배면에 배어 있는 자기 절제는 극소의 언어로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시적 직관이 담겨 있다. 1977년 안병찬(1930~)은 시집 ꡔ싸리꽃ꡕ에 이어 시집 ꡔ그믐달 한 조각을ꡕ(1984)을 간행하였고, 변종식(1936~) 또한 1978년 《한국문학》에 시 「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ꡔ온돌ꡕ(1981), ꡔ친구들에게ꡕ(1984) 등을 통해 전통적 서정의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채성병(1950~)은 1978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하여 ꡔ녹슨 단추가 달린 주머니 속의 시ꡕ(1989), ꡔ별을 찾아서ꡕ 등을 간행하였다.
1979년 최승자(1952~)는 《문학과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등을 발표하였다. 이를 출발점으로 최승자는 80년대 왕성한 시작 활동을 전개하여 80년대 여성 시인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불러도 삼월에는 주인이 없다
동대문 발치에서 풀잎이 비밀에 젖는다.

늘 그대로의 길목에서 집으로
우리는 익숙하게 빠져들어
세상 밖의 잠속으로 내려가고
꿈의 깊은 늪 안에서 너희는 부르지만
애인아 사천 년 하늘 빛이 무거워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우리는 발이 묶인 구름이다.

밤이라 복면한 바람이
우리를 불러내는
이 무렵의 뜨거운 암호를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
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을
우리는 풀지 못한다.
- 「이 시대의 사랑」, 전문

위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최승자는 ‘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을, 사랑 없는 시대의 사랑이라는 시각에서 맹렬하고 강한 언어로 노래한다. 시집 ꡔ이 시대의 사랑ꡕ(1981)에 이어 ꡔ즐거운 일기ꡕ(1984), ꡔ기억의 집ꡕ(1989), ꡔ내 무덤 푸르고ꡕ(1993), ꡔ연인들ꡕ(1999) 등의 시들은 80년대를 질주하여 90년대를 관통하는 여성시의 첨단을 형상화시킨 예이다.
1979년 이상현(1940~)은 《현대시학》에 시 「산사」 등을 추천받았는데, 그는 이미 196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동시집 ꡔ스케치ꡕ(1974), ꡔ생각하는 소년ꡕ(1978) 등을 간행한 바 있다.
형성기의 고대 시단은 전체적으로 보아 1960년 정진규가 서두를 장식하였고, 이어 오탁번이 화려한 불꽃을 점화시켰으며 이성선, 김명인, 최동호 등에 의해 골격이 이루어지고 70년대 말에 등단한 최승자에 의해 여성시의 개화를 맞는다고 요약된다. 고대 문학 100년의 역사에서 형성기에 등단한 시인들은 그 등뼈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지속적인 활동은 태동기 시인들에 의해 영향받은 바가 크지만, 그들의 시작 활동은 양적인 측면은 물론 질적인 수준에 있어서 고대 시단을 한 단계 전진시킨 것이 분명하다.

4. 고대 시단의 모색기

고대 시단의 모색기는 1980년부터 1989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80년 광주 사태가 일어난 비극의 시대였으며, 88년 서울올림픽으로 상징되는 세계화 시기이기도 했다. 문단적으로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납․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발표되어 1948년 이후 일반에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정지용, 김기림 등의 시가 일반들에까지 개방되는 역사의 장이 열렸다. 80년대 초반의 극단적인 억압과 80년대 후반의 개방적 해금은 이 시대의 양극을 보여 준다. 80년대 초반 억압의 시대에 문단에서는 오히려 ‘시의 시대’라는 명명이 부여되지만 고대 시단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아마도 많은 고대생들이 학생운동의 전면에 나서 사회 개혁을 주도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1980년 이무원(1942~)이 《시문학》으로 원동은(1943~)이 《시조문학》으로, 그리고 1983년 최건(1940~)과 조석구(1941~)가 《시문학》으로 등단하지만 이렇다할 문학적 사건으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이무원이 ꡔ물에 젖는 하늘ꡕ(1980), ꡔ그림자 찾기ꡕ(1987) 등의 시집을, 원동은이 ꡔ바다가 기침을 하는지 어쩌는지ꡕ(1994), 조석구가 ꡔ객토ꡕ(1981), ꡔ땅이여 바다여 하늘이여ꡕ(1983), ꡔ허리 부러진 흙의 이야기ꡕ(1983), ꡔ닻을 올리는 그대여ꡕ(1986) 등을 통하여 그들 나름의 시세계를 개척해 나간다.

체장수 아줌마가
허공에 수많은 원을 그리며
골목길을 간다.
圓들이 하늘에 둥둥 떠서
푸르게 부서진다.
다람쥐 체바퀴 돌 듯
원형의 전설을 안고
시작도 끝도 없이 가고가면
또 다시 원점임을.
- 「체장수」, 첫 부분

골목길을 걸어가는 체장수 아줌마가 전하는 원형의 전설과 병든 도시의 대비는 통상적인 서정시의 기본 구도이다. 재치 있는 통찰이 엿보이지만, 되풀이되는 순환적 사고는 시적 자기 극복이라는 점에서 조석구의 시적 전개에 하나의 과제로 남는다.
잠잠하던 고대 시단에 충격을 던진 것은 1984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동시에 석권한 오태환(1960~)이다. 그의 신춘문예 동시 등단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인데, 1960년대 오탁번이 신춘문예 세 부분 당선을 기록한 이후 두 번째이다.

어깨 너머에서 하늘이
그믐빛으로 걸려 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낮게
흔들리는 별들의 社稷
그늘마다 어둡게 젖어 있는
王朝의 뜨락에는
丸藥같이 쓰디쓴 담배 연기가 흐리다.
돗수가 높은 안경을
쓴 帝王이 그저 무심히
바라보는
채 丹楓이 지지 않은 박명의 숲
그냥 어둠이 된 품석의 음각 어디쯤
눈썹이 맑은
白雪의 고요가 춥다.
살아서 눈물겨운 사랑이
용서하고 또 용서한
사소한 시대의 저녁
나라의 法은 通史적부터 편안하고
아직 宗廟의 별빛은 저렇게 화사한데
몇 잔의 소주를 땅바닥에 찌끌며
젊은 帝王은 슬프다.
- 「癸亥日記」, 첫 부분

시를 구성하는 세 개의 부분이 각각 21행 모두 63행에 이르는 「癸亥日記」는 장중한 호흡을 이끌어나가는 서사적 구성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세련된 언어 구사 등으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할 만한 역작이다. 왕조의 나태와 몰락을 질타하고 사랑의 ‘맑고 큰 울음빛’의 도래를 노래한 그의 시는, 동시대의 군부의 억압과 통제에 대한 풍자로도 읽힌다. 오태환은 이후 ꡔ북한산ꡕ(1986), ꡔ수화ꡕ(1988)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는데, 아직은 초기의 서사적 무게를 적절히 이끌어나가는 힘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태환에 뒤이어 1985년 민병기와 서근석이 등단하였다. 민병기(1946~)는 《시인》으로 등단하고 시집 ꡔ물방울의 꿈ꡕ(1986)을 간행하였으며, 서근석(1943~)은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ꡔ오천년 언덕에서 울었다ꡕ(1985), ꡔ깊은 밤 시인이여ꡕ(1987) 등을 간행하였다. 1987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한 김채수(1949~)도 ꡔ우상의 음영ꡕ(1989), ꡔ이제는 여러 많은 것들과의 만남을 위해ꡕ(1992), ꡔ형이상의 땅 위에서ꡕ(1993), ꡔ빛을 핥는 뱀에게ꡕ(1998) 등의 시집을 발간하여 꾸준한 시작 활동을 전개했다.
1988년 이희중(1960~)과 박순업(1965~)이 등단하였다. 이희중은 1987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이어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하고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었다. 이희중은 시집 ꡔ푸른 비상구ꡕ(1994), ꡔ참 오래 쓴 가위ꡕ(2002) 등을 간행한 동시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무에게나 속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심야의 초대를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신도시에서는 술친구를 만들지 않겠습니다
여자의 몸을 사랑하고 싱싱한 욕망을 숭상하겠습니다
건강한 편견을 갖겠습니다
아니꼬운 놈들에게 개새끼, 라고 바로 지금 말하겠습니다
온전과 완성을 꿈꾸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늙어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 살아 있음을 대견해 하겠습니다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견디기를 더 연습하겠습니다
울지 않겠습니다
- 「오늘의 노래」, 중간 부분

「오늘의 노래」에서 화자는 지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따른 슬픔과 원망으로부터 삶의 새로운 각오를 얻는다. 모두 열여섯 개에 이르는 다짐은 일차적으로 우리들 삶의 유한성과 불구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삶의 지속성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는 우리의 기대를 전복하고 그 허구성을 폭로한다. 일면 시인이 화자의 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각오의 내용은 삶의 최소 의미조차 부정하는 회의주의자, 허무주의자의 공격적인 몸짓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것은 불확실한 ‘내일’의 대칭 개념으로서 확실한 ‘오늘’에 대한 긍정의 결과이며, 오히려 삶에 대한 깊은 사랑의 우회적인 표현임을 알게 된다. 이는 이희중의 시 쓰기에 특징적으로 작동하는 수사적 방법이다. 이러한 수사법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어중간한 중용주의라는 비판이 뒤따르기 쉽다.
박순업은 시집 ꡔ1차원의 나라ꡕ(1991)를 간행하였는데, 그의 시는 숫자와 기호를 통해 실험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1989년 이갑상(1944~)과 이진우(1965~)가 등단하였다. 이갑상은 ꡔ사랑타령ꡕ(1989), ꡔ꽃이미지ꡕ(1990), ꡔ내가 산이 되어 하늘이 있고ꡕ(1992) 등을 이진우는 ꡔ슬픈 바퀴벌레 일가ꡕ(1994), ꡔ내 마음의 오후ꡕ(2003) 등을 간행하였다. 80년대 마지막 주자 이진우는 「가방」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가방 하나가
책상에 매달렸다.
몇 년을 그렇게 매달려 살아 이젠
떨어질 것 같은 끈
문득 나는 버려진 분필마냥 처량하다.
가방은
속엣 것 다 게워내고
그러다 속이 비어
빈 먼지들만 푸울푸울 날리면
그제서야 날 버리지 말라고
날 버리지 말라고 매달린다.
- 「가방」, 첫 부분

버려진 자아를 노래한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80년대의 시가 포스트모던한 시대를 향하여 자신의 존재를 안타깝게 하소연하는 것도 같고, 80년대 침체한 고대 시단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80년대 후반부터 몰아쳐온 포스트모던 시론은 시의 해체를 주장하면서 시의 자기 부정에까지 치달리는 위험성을 보여 주었다. 시가 일회용 소모품으로 쓰여지고 버려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가 부정되는 시대를 맞이하여 고대 시단이 커다란 도약을 모색했다는 것은 고대인만의 특유한 현실 대응 방식이 작용한 바 없지 않을 것이다.

5. 고대 시단의 도약기

고대 시단의 전개 과정에서 도약기는 1990년부터 현재까지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시단의 80년대가 침체와 모색의 시대였다면 90년대 이후 고대 시단은 크게 혁신되어 일대 도약기에 돌입한다. 우선 문단 진출에 있어서도 한 해에 두세 명은 물론이고 대여섯 명이 대거 등단하는가 하면, 신춘문예 당선자들도 지속적으로 배출되어 현재 활동하는 젊은 세대의 시인들 중에 고대 출신의 시인들이 30여 명을 넘어섰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중심부를 점한 사실이다. 또한 최정례를 필두로 해서 예현연에 이르기까지 여성 시인들이 상당수 진출했다는 사실도 눈에 띄는 변화이다.
1990년 최정례(국문, 74)가 《현대시학》, 이학성(국문, 81)이 《세계의문학》, 박정대(국문, 84)가 《문학사상》 등으로 등단한다. 최정례는 ꡔ내 귓속에 장대나무 숲ꡕ(1994), ꡔ햇빛 속에 호랑이ꡕ(1998), ꡔ붉은 밭ꡕ(2001) 등을 통해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단 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초기의 시는 관념적 수사가 많았으나 90년대 후반에 쓰여진 그의 시들은 날카로움과 긴장감을 아울러 지닌 뛰어난 시법을 보여 최승자 이후 고대 여성시를 대표하는 선두주자가 되었다.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푸른 골짜기 사이 붉은 밭을 보았습니다 고랑 따라 부드럽게 구불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풀 한포기 없었습니다 그러곤 사라졌습니다 잠깐이었습니다 거길 지날 때마다 유심히 살폈는데 그 밭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내 교과서를 아궁이에 쳐넣었습니다 학교 같은 건 다녀 뭐하냐고 했습니다 나는 아궁이를 뒤져 가장자리가 검게 구불거리는 책을 싸들고 한학기 동안 학교에 다녔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릅니다

타다 만 책가방 그후 어찌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밭 왜 풀 한포기 내밀지 않기로 작정했는지 그러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가끔 한밤중에 깨어보면 내가 붉은 밭에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 「붉은 밭」, 전문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되면서 유년 시절의 아픈 추억이 회상되는 위의 시가 보여 주는 충격적인 고백과 언어적 밀도는 최정례의 시가 동세대 여성시의 한 정상에 있음을 알려 준다. 날카로움과 속도감을 아울러 지닌 그의 시들은 때때로 단조로움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허상을 통렬하게 파헤치는 역동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적 미래는 앞으로 크게 열려 있다고 판단된다.
박정대는 ꡔ단편들ꡕ(1997), ꡔ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ꡕ(2001) 등을 간행하였는데, 초기 그의 시들은 뛰어난 언어감각으로 시와 산문과 음악을 혼종시킨 실험적인 형태를 취하였으나 이러한 실험적 방법을 떨쳐버리고 쓰여진 시들에서 그 나름의 정제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그곳에 가면 네가 있을 것만 같다
바람에 부서지는 섬들과 모래톱 사이로 스며드는
따스한 물방울들, 그곳에 꼭 네가 있을 것만 같다
어젯밤에는 바람 속으로 망명하는 꿈을 꾸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잎들이 밤새도록 내려
서럽도록 그리운 너의 안부를 덮어주었다
- 「새들은 목포에 가서 죽다」, 전문

위와 같이 짧게 정제된 시에서 박정대 나름의 개성이 잘 발휘된다. 지나친 실험시 또는 시와 산문의 경계가 무너진 시들은 그에게는 극복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사랑의 감정에 얹힌 연애시를 벗어나는 것도 큰 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치루어야 할 관문이 될 것이다.
1991년 강윤후(국문, 81)가 《현대문학》으로, 강연호(국문, 81)가 《문예중앙》으로, 김태희(국교, 83)가 《현대시학》으로, 맹문재(국문, 95)가 《문학정신》으로, 김용환(영문, 84)이 《현대시학》으로, 권이영(1941~)이 《심상》으로 등단했다. 강윤후는 시집 ꡔ다시 쓸쓸한 날에ꡕ(1995)를 강연호는 ꡔ비단길ꡕ(1994), ꡔ잘못된 길이 지도를 만든다ꡕ(1995), ꡔ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ꡕ(2001), 김태희는 ꡔ나는 블루와 사랑을 해ꡕ(1997), 맹문재는 ꡔ먼 길을 움직인다ꡕ(1996), ꡔ물고기에게 배우다ꡕ(2002) 등을 각각 간행하였다.

눈 개인 아침
산은 굵은 뼈를 하얗게 드러낸다
입맥처럼 뚜렷한 산의 정기
거기에 樹液이 흐르고 있을까
먼 세월의 지층을 울리는 한 줄기 물이
그 굵은 뼈마디마다 흐르고 있을까
산에 가지 못한 나무들은
제풀에 잔가지를 뚝뚝 분지르고
산에서 내려온 길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지는데
산이 새는 것일까
- 「눈 그친 산」, 첫 부분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위의 시를 읽어 보면, 강윤후가 먼 세월의 지층에서 끌어올린 샘물을 마음 속에 지닌 서정시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강윤후의 시적 정공법은 좀더 다양한 삶의 역경과 충돌하면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얻게 되리라 여겨진다.

종이 봉창을 자주 열어봅니다
마른 버즘 가득한 닥나무 울 너머
어디까지 산인지 어디까지 들인지
희디 흰 이불 호청 겹겹 널린 벌판
어두워질수록 따뜻하게 밭이랑 덮어주며
송이눈은 밤새 실할 모양이지만
읍내 쪽에서의 인편이 더럭 걱정입니다
넉넉하지 못한 풍문에나마 귀 기울입니다
더듬더듬 억지 자불음 키우며
돌아누워도 보는 세밑
그예 일어나 들춰보는 낡은 사진첩 속에
겨운 시름이 흑백으로 박혀 있습니다
- 「세한도」, 중간 부분

강연호의 「세한도」는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하면서, 오태환의 「癸亥日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강연호의 시적 정서가 농민들의 생활 감정에 더 짙게 닿아 있다는 점에서 오태환이 귀족적이라면 강연호는 서민적이다. 서민적이라는 점에서 고대인들의 인간적 체취가 풍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그의 시에 요구되는 것은 일상의 안락이 가져다주는 유혹을 뿌리치는 일이다.

한평생 지게만을 진 아버지도
그 아래에서 떨어진 낟알 줍느라 손이 해진 어머니도
제철소에서 쇠를 만들고
화물차를 몰고
전자제품을 수리해서 밥을 먹는
그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들도 바라던 아기가
떼를 쓰며 왔다

아기가 온 날 저녁
프로 야구장이 넘치는 것이 보이지 않았고
방세를 올리라는 집주인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양치질을 끝냈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
병원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자꾸 인사를 했고
하늘을 푸르게 생각했다
- 「눈물」, 첫 부분

맹문재의 「눈물」은 아이를 얻고 난 다음의 기쁨을 노래한 시이다. 가난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아기의 탄생은 축복이며, 그 기쁨을 그는 병원 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자꾸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맹문재의 시는 노동의 현장에서 쓰여졌고 신산한 생활 감정에 의해 발효되었다. 그의 시적 힘은 진실한 생활 감정에서 비롯되지만,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깊고 정련된 시적 언어의 발굴이다.
1992년 박순원(국문, 84)이 시집 ꡔ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ꡕ를 발간하였으며, 1993년 김기중(국문, 73)이 《한국문학》으로, 박정래(국문, 81)가 《서정시학》으로, 송종찬(노문, 85)이 《시문학》으로 등단하였다. 박정래는 ꡔ매력 없는 여자의 매력이 나는 좋다ꡕ(1993)를 송종찬은 ꡔ그리운 막차ꡕ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1994년에는 이장욱(노문, 87)이 《현대문학》으로, 김재혁(독문, 87)이 《현대시》로, 문태준(국문, 89)이 《문예중앙》으로, 우종현(국교, 89)이 《문학사상》으로, 강창걸(국문, 89)이 《문학정신》으로 등단하여 다양한 공식 지면을 통해 한 해 다섯 명이 한꺼번에 문단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고대 시단 100년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따뜻한 저녁
누군가의 아이를 가지고 싶은 여자처럼
달뜬 꿈꾸네 수유리에서 백반을 먹고
우이천 다리를 따라 걷다보면 이곳은
무슨 연옥일까 마른 하천에
제 몸의 젖줄을 대고 머리 푼 여자처럼
천변 나무들의 송송한 모관들 모두
얕은 물가 쪽으로 화사하게 몸을 여네 따뜻한 저녁
제 몸의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우리 동네 미친년 하나
제방을 내려가네 물끄러미
나는 저녁산 쪽으로 눈을 돌리네
산머리에서 세상은 발갛게 타고있네
따뜻한 저녁
- 「노을과 함께」, 전문

이장욱의 「노을과 함께」는 사물을 투시하는 언어 능력과 작품을 완결짓는 시적 능력을 아울러 보여 준다. 특히 위의 시 마지막 행 ‘따뜻한 저녁’이라는 어구는 불필요할 것 같기도 하지만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 여운이 독자로 하여금 다시 시의 첫 부분으로 되돌아가게 만들면서 화자가 묘사한 저녁 풍경의 세목들을 새삼 음미하게 한다. 늘상 접하는 풍경들을 이처럼 시적으로 치환시켜 놓은 것은 그의 시적 능력이지만, 여기서 너무 멀리 나가 관념에 기울어지는 것은 그의 시가 지닌 약점이 될 것이다.

바람 심한 날 나는 곡괭이로 동굴을 판다
사방 다섯 자씩 파고서 쪼그려 몸을 눕힌다
몸 주위로 몰려드는 어둠들을 강아지처럼 쓰다듬으며
나는 내 몸을 따라온 하얀 생각들을 가만히 눕힌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동네 십리 밖을 나가 보지
못했다는 고향 마을 이슬치기 노인의 주검 같은
생각들을 일상의 다른 생각들 옆에 나란히 눕히고
오른편 생각에는 해 걸고 왼편 생각에는 달 걸어
생각이 생각 속에 생각에 잠기도록 둔다
- 「내가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첫 부분

김재혁의 위의 시는 ‘생각 속에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사유에 사유를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과제는 깊은 사유의 세계를 펼치되 사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유를 시적 표현으로 육화시키는 일이라고 하겠다. 사유 자체는 시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 자체가 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얻어온 개가 울타리 아래 땅그늘을 파댔다
짐승이 집에 맞지 않는다 싶어 낮에 다른 집에 주었다
볕에 널어두었던 고추를 걷고 양철로 덮었는데
밤이 되니 이슬이 졌다 방충망으로는 여치와 풀벌레가
딱 붙어서 문설주처럼 꿈적대지 않는다
가을이 오는가, 삽짝까지 심어둔 옥수숫대엔 그림자가 깊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
가을이 오는가, 감나무는 감을 달고 이파리 까칠하다
나무에게도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 일 그런 성싶다
지게가 집 쪽으로 받쳐 있으면 집을 떠메고 간다기에
달 점점 차가워지는 밤 지게를 산 쪽으로 받친다
이름은 모르나 귀익은 산새소리 알은체 별처럼 시끄럽다
- 「처서」, 전문

문태준의 「처서」는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강연호의 「세한도」와 유사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고대인들이 가진 농촌 정서의 표현일 것이다. 문태준은 강연호에 비해 더 깊고 후미진 산골의 풍경을 떠올려 준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풍경과 삶은 이미 70년대 농민시가 많이 다루어 온 소재로서 독자에게 크게 신선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태준의 과제는 앞으로 어떻게 이를 자기만의 세계로 심화시키는가이다. 이 성과에 따라 시인으로서 그의 역량이 평가될 것이다.
1995년 최성윤(국문, 90)이 《문화일보》의 추계 공모에 당선하였으며, 1997년 심재휘(국문, 82)가 《작가세계》로, 권혁웅(국문, 86)이 《문예중앙》으로 등단하였다.

못을 박다가 손가락을 내리쳐 보신 적이 있는지
손가락이 아니라 잘못 맞고 굽어버린
못을 위해 슬퍼해 보신 적이 있는지
먼지 쌓인 구석마다 혹은
그대 마음의 후미진 구석 구석에
뽑히지 않은 채 잊혀져가는
크고 작은 못들이 있음을 아시는지
못 박기 좋은 손 없는 날 오후
내 서툰 못질과 바꾸어버린
이 통증으로 인하여
못을 생각한다
- 「못에 대한 생각」, 첫 부분

심재휘의 시는 통증에 대한 반응으로 쓰여진다. 마음에 박힌 못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아픔이자 상처이다. 그러나 그 상처의 강도가 문제이다. 누구나 마음의 후미진 구석에 상처를 갖고 살고 있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정직한 정공법의 언어로 서술하는 것은 시적 감응을 약화시킨다. 표준적인 시의 정도를 전복시켜, 시적 신선감을 찾아내는 것이 그가 타개해 나갈 과제일 것이다.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 「파문」, 전문

권혁웅은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당선되기도 하였으며, 시집 ꡔ황금나무 아래서ꡕ(2001)를 간행하였다. 그의 시적 특징은 화려한 수사와 섬세한 시어이다. 「파문」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언어의 결을 예민하게 포착할 줄 아는 남다른 시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언어가 섬약하여 부스러지기 쉬운 것은 그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1998년 이영광(영문, 84)이 《문예중앙》으로, 김종태(국교, 90)가 《현대시학》으로, 이동재(국교, 84)가 《문학과의식》으로 등단했다. 이동재는 ꡔ민통선 망둥어 낚시ꡕ(1999), ꡔ세상의 빈집ꡕ(2003), 이영광은 ꡔ직선 위에서 떨다ꡕ(2003) 등의 시집을 냈다. 이영광의 시는 권혁웅의 시에 비해서 남성적이고 우람하다.

이월의 하느님이
협곡에 기대인 폭포를
천천히,
쓰러뜨린다

허허한 공중의 칼에 베인
지상의 허허한 빈 몸

나는 그 분이
빙폭의 투명을 두 손에 적시며
말없이
사라지는 걸 본다
- 「빙폭 3」, 첫 부분

그의 시에는 남성적 의지와 정신주의의 흔적이 엿보인다. 거시적 통찰과 미시적 언어가 공존하는 그의 시는 진솔하고 생생한 세계를 열어 보인다. 시적 언어에 긴장의 밀도가 느껴진다는 것은 첫 시집을 간행한 신진 시인인 그의 장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어온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지혜롭게 심화시키는가 하는 것이 그의 시적 과제일 것이다.
90년대를 마무리하고 20세기가 저무는 1999년 김행숙(국교, 90)은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는데, 뒤이어 시집 ꡔ사춘기ꡕ(2003)를 간행했다. 김행숙의 시에는 사춘기 소녀의 발랄함이 있다.

우산을 모자처럼 쓰셨네
어디를 향해 서 계신가, 알 수 없네
따라서 내 시선은 자유롭네
찬찬히 훑어나가다
걸레처럼 훔쳐보지만
시선의 애무로는 벗길 수 없네
큰 모자, 저 엉뚱하게 큰 머리
실실실 비는 내려
우산을 모자처럼 쓰셨네
내 시선은 비처럼 주저앉네
앉은걸음으로 바짓부리 맴을 도네
나이테를 그리고 있어
늙어가는 남자
부동의 남자
우산을 모자처럼 쓰셨네
큰 모자 아래서
작은 계집애 조잘대지
재밌네, 저 엉뚱하게 큰 머리
- 「뿔」, 첫 부분

김행숙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약간의 비뚤어진 시선은 사물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일 것이며, 이는 그가 모범적으로 사춘기를 보냈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의 시적 전진은 보다 더 과감한 전복과 파행을 완결된 작품 속으로 끌어들임으로 가능해지리라 판단된다.
2000년대 들어서서 고대인의 시단 진출은 계속되어, 이제는 수적으로 국내의 다른 대학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2000년 여태천(국문, 90)이 《문학사상》으로, 장만호(국문, 90)가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2001년에는 박진성(서양사, 97)이 《현대시》로, 2002년에는 장석원(국문, 87)이 《대한매일》로, 하재연(국문, 94)이 《문학과사회》로, 2003년에는 노춘기(국문, 92)가 《문예중앙》으로, 2004년에는 예현연(국문, 98)이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미끄러지듯 그 해 여름이 지나갔다 거짓말같이
너를 찾아가는 길 밖으로 비가 내리고
비린내는 지리한 강물이 되어
능선을 타고 넘어 흘러들어 갔다
산을 타고 넘어가던 강물 따라 철없이
흔들리던 네가 있었다
따라서 흔들리던 코스모스가 있었다
길 한 쪽 끝까지 강물은 밀려왔고
젖은 황토를 두 손으로 겨우 움켜쥐고 어머니는
지난 겨울 마른 바람소리처럼 떨고 계셨는데
생솔가지 냄새나는 棺 위에
색바랜 네 사진들과 까칠한 흔적들 위로
이 세상에서 마지막 한줌 흙, 비처럼 쏟아졌다
- 「길」, 첫 부분

여태천의 시는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가는 하지만 아직 직설적인 어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시적 진실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들이 시의 문법을 바르게 구사하고 있지만 삶의 진실을 직관하는 투철한 언어적 정련이 더욱 요구된다.

함부로 살았다, 탕진할 그 무엇도 없었다
그대에게 말할까 말까, 사랑하는......
어머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석달 열흘
한 줌의 마늘과 쑥을 드시고도,
강림하지 않는 아버지를 우리가 기다릴 때
그대를 만나고 미아리나 수유리 저녁을 만날 때
간혹 희망은, 뽑지 않은 사랑니처럼
아팠다, 생애의 묽은 죽을 반추하거나
희망과 혁명을 바꿔 부르기도 했지만,
집 근처 국립묘지의 무덤과 무덤들
푸르고 단단한 입술들이 일러주던 또 다른 피안은
시대의 낙엽들 되돌아갈 길을 묻고 있었다
- 「수유리에서」, 첫 부분

위의 시에서 장만호가 던지는 질문은 그 자신에게 되돌려져야 할 것이다. 사랑의 아픔과 하소연이 담겨 있지만, 그가 전하는 아픔이란 크게 탕진된 것은 아니다. 좀더 과감하게 밀고나갈 때, 탕진할 그 무엇도 없는 시가 쓰여질 것이고, 그 지점에서 그는 진정한 시인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아직 그가 신진 시인이란 점에 기대를 갖고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백 송이 꽃을 피운 수련은 어느덧 물에 잠겼다. 서서히 문이 열리고 있었고, 바람은 그때 태어났다.

나의 이름은 피곤한 바람이다. 나는 백 송이 수련이 내뱉은 한숨이다.

햇빛이 몸을 데워 비상했고, 몸 속에는 한 방울 물이 갈증을 태우고 있다. 내 몸은 지금 구름빛이다. - 「낙하하는 것의 이름을 안들 睡蓮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첫 부분

장석원의 시에는 약간의 과장법이 구사되며, 거기에는 뜻모를 허무주의가 깃들어 있다. 그의 허무주의가 광택을 발휘하려 할 때 겉멋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시적 에너지로 승화되기도 한다. 허무적 댄디즘을 떨쳐버릴 때 그의 시는 현실에 투철한 표현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

25시 슈퍼마켓의 왼쪽 네번째 선반,
푸른색 정어리 통조림이 천사백 원이다
먼지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앉아 있다
나는 만 원을 내고 동전 두 개를 짤랑거리며 돌아온다
뼈째 담겨 있는 일곱 개의 죽음, 혹은 일곱 끼의 식탁

부엌 창 앞의 정어리들, 뾰족한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있다
정어리의 머리들은 전부 어디로 갔는가?
소나기와 고양이가 가끔 창문을 기웃거리다
그들의 지문을 남겨 놓는다
그러나 정어리는 고양이에게 고양이는
소나기에게 소나기는 정어리에게 무관심하다
무관심한 그들의 지문을 며칠째 남겨 놓는다
- 「25시 슈펴마켓」, 첫 부분

하재연의 시는 사물을 사물로 다루는 지적 통어에 의해 쓰여진다. 그는 감정의 과잉을 용납하지 않고 이지적 질문과 논리적 구성으로 시적 행간을 이끌어 나간다. 그의 시가 일반적인 고대 정서와는 약간 이질적인 세계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고대 시단에서 여성시로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며, 앞으로 최승자, 최정례에 이어 또다른 성취를 보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금간 항아리 사이로 그녀와 내가 교차한다
비어있는 것들을 배경으로 그녀는 흐릿하다
先史보다 아득하게 먼지낀 세월이
두터운 유리벽으로 앞을 가로막는다
古代의 여인이 회갈색 미라로 누워있다
유폐된 황녀의 마지막은 고통뿐이었다
벌린 입 속 수천년을 견딘 치아들이 온통 틀어졌다
푸른 비소 알갱이 갈앉은 자기병이 그녀의 유품이다
벽옥 파편들은 멸망한 족속의 文字처럼 어지럽다
지하 전시관에서 부식되는 황녀의 초상
흩어진 채색, 이제는 밑그림만 남았다
낯선 유적에서 마주치는 그녀와 나의 낡은 눈동자
저 자기병에 맺힌 유약은 수천년 전부터 글썽여온 울음이다
- 「유적」, 첫 부분

예현연의 시는 고대 시단 100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박물관에 진열된 고대의 여인을 바라보고, 이를 현재의 자신에 투영시켜 전개된 위의 시 「유적」은 시적 구성의 완결성과 치밀한 관찰을 동반한 묘사의 적절성이 시적 공감을 자아낸다. 고대 유물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통찰력으로 이제 첫 출발점에 선 그에게 앞으로의 시적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90년대 이후에 등단한 고대 시인들은 이제 21세기 한국 시단의 선두주자들이다. 그들이 지난 세기 동안 선배 시인들이 정성들여 가꾸어 온 문학적 성과를 풍요롭게 가꾸어 나간다면 고대 시단은 한국 문학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에서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90년대 전면에 등단한 시비평가들이다.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론가들만 예거해 보아도 이혜원(국교, 85), 이희중(국문, 80), 이창민(국문, 86), 유지현(국문, 86), 이상숙(국문, 89), 오형엽(영문, 83), 황치복(국문, 86), 권혁웅(국문, 86), 전도현(국문, 84), 정혜경(독문, 84), 김한식(국문, 86), 박정선(국문, 92), 이경수(국문, 87), 김남석(국문, 90), 이성우(국문, 84), 오양진(국교, 88), 김문주(국문, 87), 정은경(독문, 87), 임준서(국문, 87), 정재림(국교, 94) 등 20명이며 여기에 강진호(국문, 81), 황정산(불문, 78), 고미숙(독문, 78), 정혜경(독문, 84), 노철(독문, 81), 이상오(사학, 87), 신희교(국교, 88) 등 계간지나 문예지 출신 평론가들을 가산한다면 30여 명에 가까운 비평가들이 90년대 이후 한국문단에 대거 등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창작과 비평을 함께 아우르면서 이들 모두가 상부상조하며 고대문단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이며, 이론이나 창작 어느 한편에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 있게 문인이 두루 배출되고 있는 것은 여타의 다른 대학에서 찾기 힘든 고대만의 특색이기도 하다.
1950년대 황량한 태동기를 돌이켜 보면 도약기에 돌입한 고대 시단은 자체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질양면에서 풍성하여 대외적으로 국내의 다른 어떤 대학 출신 시인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특기할 것은 2004년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에서 고대 국문과 대학원 출신들이 시, 소설, 문학 평론, 희곡, 영화 비평 등의 부문에서 다섯 명이나 동시에 당선했다는 점이다. 90년대에 축적한 문학적 에너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된 단적인 예이다. 이는 고대 시단이 내일의 한국 문학을 이끌어나갈 충분한 문학적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고 해석된다.

6. 세계화 시대의 고대 시단

고려대학교 100년의 역사에서 고대 시단 60년사는 다른 분야보다 크게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다. 고대 시단의 성장은 고려대학교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면서 한국 문단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 시단을 선도하는 시인군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현재까지 71명의 시인이 등단한 것으로 종합되는 고대 시인군은 그 스승격인 조지훈의 요절과 박재삼의 타계에도 불구하고 김종길을 좌장으로 대부분 생존 현역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우선적인 큰 특징이다.
문단 진출을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태동기 7명, 형성기 20명, 모색기 13명, 도약기 31명 등 모두 71명이며, 등단 매체를 살펴보면 신춘문예 12명, 문예지 53명, 시집 출간 6명이며, 출신 학과별로 찾아보면 국문과가 38명으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영문과 15명, 국교과 6명, 경제과, 독문과, 노문과 각 2명, 농학, 농화학, 신방, 철학, 법학, 서양사 각 1명 등으로 집계된다. 태동기에는 영문과의 김종길, 민재식 등이 선편을 잡았고, 이후 박재삼, 정진규 등을 배출한 국문과가 시단 진출의 중심 학과가 되었으며, 80년대 창설된 국교과에서도 시인 진출이 두드러짐을 볼 수 있다.
고대 시단의 시적 특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조지훈과 김종길의 시적 경향처럼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고고한 품격을 탐구하는 것이 고대인의 주류가 되는 시정신이다.
둘째, 민족의 대학이라는 교풍처럼 서민적이며 농촌의 생활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 고대인의 기본적 생활 감정이다. 이러한 시적 정서는 인간적 친화력과 시적 진실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해석된다.
셋째, 극단적인 실험시와 파격적인 해체시가 드물고 시의 정도를 탐구하면서 언어적 공들임에 힘을 기울이는 서정시가 고대 시단의 표준적인 지향점이다.
이러한 세 가지 점들을 돌이켜본다면 고대의 시단에는 극단적인 민중시인도 극단적인 해체시인도 없으며, 불편부당한 시각에서 민중적인 정감을 민족적인 언어로 형상화한 서정시로서 한국인들 시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이 20세기 고대 시단의 축도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대학교가 개교 100년을 넘어서 새로운 세기로 나아가는 것처럼 고대 시단 또한 21세기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날의 비약적인 성장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역사적,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때 고대 시단은 또다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는 ‘민족의 대학’이라는 70년대의 이념적 지표를 다시 한번 환골탈태할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기 위해 고대 시단이 나아갈 전망을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해 두고자 한다. 첫째, 사이버 세상이 도래하면서 인문학의 종말과 시의 시대가 끝났다는 불길한 전망이 도처에 유포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 시대야말로 다른 어떤 문학의 매체보다 노래와 이미지를 통해 시가 자신의 공간을 넓혀나갈 수 있는 시대이다. 활자 매체의 시대가 끝나고 영상 매체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영상 시대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산업의 핵심 코드에는 시적인 것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적 이미지, 시적인 언어, 시적인 감정이 없다면 문화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적인 기능이 오히려 강화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고대 정서의 기본이 되는 민족적이며 서민적인 시적 감정이 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적 보편성으로 심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고유한 감정을 특수성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 시각에서 객관화시키는 국제적 감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셋째, 사이버 세상, 국제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고대 시단이 가지고 있던 인간적 친화력이나 진실성이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 고대인의 장점을 더욱 심화시켜 가상 현실이 지배하는 세계화 시대를 열어나갈 때, 고대 시단은 안암동이나 한국 문단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시인을 산출하게 될 것이라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고대 시단을 우선 한국 문단의 대표적이며 중심적인 위치로 격상시킨 많은 시인들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시적 정신은 그들 개인의 빛나는 시적 업적일 뿐 아니라 고려대학교가 한국 문화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근거가 될 것이다. 특히 새로운 세계의 선두주자가 될 90년 이후 시단 진출자들에게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들이 한국 시단의 정상에 우뚝 설 때 고려대학교 또한 뿌리 깊은 나무로서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잡을 것이며, 이를 토대로 세계화 시대를 선도할 문화적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