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화사기花史記』1975

<시> 겨울 삽화

洪 海 里 2005. 11. 3. 06:23

 

겨울 삽화

 

홍해리(洪海里)
 


석유 파동 이후
연탄이 빨갛게 타는
난로 주변
주택복권 얘기가 꽃피고
조간신문 7면
잉크에 젖어 있는
매몰 광부의 구겨진 유서.


사람들은 다 어디 가 숨고
보드라운 혓바닥만 살아
뱀도 되고 은어도 된다
헐벗은 가슴의 사내들이
값싼 유행가를 부르는
이 깊은 밤 갑갑한 시대
밖에서 젖고 있는 궂은 빗소리.


불만과 적개심을 데리고
할딱이는 기대의 화살을 뽑아내고
죽은 입에서 귀를 주어내고
썩은 살 속에서 눈알을 추려내고
너무 높이 있어 닿지 않는
너의 손을 적시고 있는
몇 방울의 피 뜨거운 피.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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