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화사기花史記』1975

<시> 환상

洪 海 里 2005. 11. 2. 06:47

 

환상

 

홍해리(洪海里)
 

이승의 거리마다 살울음소리만
팍팍한 환각에 젖어 있고
신선한 피바람소리를 내는 자의
발자욱은 보이지 않는다.

안개 속으로 밀려 들어가며
머리를 흔들고 있는
헛갈린 뼈마디 장단소리
건강한 눈물의 울음은 천년 후에야 서는지,

온갖 감각도
오장육부도 썩어버린
먼지만 쌓이는 천의 밤은 가기 마련이지만
지난 날은 만리 밖
달빛에 젖어있고,

튼튼한 사내들은 어디 있을까
달려가 볼 초원도 없고
산에 귀 기우리는 자도 없는 거리에서
매일 저녁 등불을 켜든 소녀들이
애환의 불꽃만 피우고 있다.

사내들은 늘어진 어깨를 흔들며
모든 타협을 수락하고 있을 뿐
쓸쓸한 이승의 꽃밭에는
허공만 젓던 손들이 하얀 뼈로 쌓여 있다.

비인 현실의 뒷뜰에
말라빠진 혓바닥이 한 조각 뎅그마니 뒹굴고
우리의 출발은 신호만이 기일 뿐이다.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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