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화사기花史記』1975

시집 『花史記』 서문

洪 海 里 2005. 11. 3. 06:26
시집 『화사기花史記』 서문/문덕수
홍해리(洪海里)
서문 : 문덕수(시인)
 

      序

 洪형이 이번에 제2시집 <花史記>를 간행한다. 제1시집 『投網圖』(선명문화사.1969)를 낸지 6년이나 되었고, 산자수명한 고향 淸州에서 상경하여 자리를 잡은 지도 몇 해가 된다. 그 동안 꾸준히 시업에 정진하여 그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후배 신진들이 그의 시를 모범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洪형이 시를 쓰는 이유를 평론이나 기타 산문형식으로 말한 일은 없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어보면 시를 쓰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고, 또 그의 시에 <詩를 쓰는 理由>라는 짧은 작품이 있다.

   십리 밖 女子가 자꾸 알찐대고 있다.

   달 지나는지 하루살이처럼 앓고 있다.

   돌과 바람 새 능구렝이가 울고 있다.

   내 안을 기웃대는 눈이 빛나고 있다.

 현상학적 관찰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그는 사물의 발견과 이해에 주력함으로써 자기의 삶을 꾸준히 확대하고 풍부하게 하고 있다. '십리 밖 女子'나 '돌과 바람 새 능구렝이'----즉 인간 관계와 卽自存在 같은 차원에서 발견, 이해되고 있고, '내 안을 기웃대는 눈', 곧 의식의 현상에 대한 인식을 볼 수도 있다. 주위의 모든 상황, 이를테면 인간과 사물이 미지의 현상으로 그를 외워싸고 있고, 그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확대와 풍부를 위해 주력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의식의 내외를 구별짓는 한계를 되도록 없애려고 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의 밖에서 인식된 인간과 사물이나, 자신의 안에서 인식된 그것들이 뚜렷한 구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모든 존재의 외피가 아니라 내적 심부로 침투하려는 의식의 촉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리라.

   샐비아 활활 타는 길가 주막에
   소주병이 빨갛게 타고 있다
   불길 담담한 저녁 노을을
   유리컵에 담고 있는 주모는
   루비 영롱한 스칼릿 세이지 빛
   반짝이는 혀를 수없이 뱉고 있다
   그미의 손톱이 튀어나와
   어둠이 되고 파도가 되고 있다.

 <다시 가을에 서서>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정서를 저류로 가진, 어느 정도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한 다소라도 감각적인 회화'라는 이미지의 정의를 연상하게 된다.(루이스의 <시적 이미지>에서)
 흔히 묘사는 감각 일변도여서 정서가 배제된 양상을 볼 수도 있으나(특히 정지용의 경우), 洪형의 시에서는 감각과 정서가 융합된 투명한 묘사를 볼 수 있다. 이 점은 확실히 洪형의 장점이다.
 인용된 윗 시에서 '그미의 손톱이 튀어나와 어둠이 되고 파도가 되고 있다'는 대목은 기발한 상징 이상의 상상 세계를 보여준다. 이 대목 전의 부분과 이 대목을 비교하면 의식 밖과 의식 안의 두 영역을 동시적으로 볼 수 있는 듯해서 흥미롭다. 그는 이와 같이 의식 내외를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그가 의식 내외를 구별짓는 벽을 헐고 있다는 점은 그의 상상력의 한 강점이다.
 한국의 시인들은 지성에 관심을 가지면 지성 쪽으로, 정서에 관심을 가지면 정서 쪽으로 몰리어, 편협적인 경향을 보이기 쉽다. 의식 내외의 벽을 헐 수 있는 능력을 가진 洪형의 상상력은 정서와 지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다. 이런 가능성은 洪형이 대성할 수 있는 좋은 징후이기도 하다.

                                             1975년 麥夏, 里門洞 寓居에서
                                                                 文德守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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