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 보리밟기

洪 海 里 2005. 11. 7. 15:02

 

보리밟기

 

홍해리(洪海里)

 

보리밟기 / 洪海里

 

 

늙으신 어머님의
주름진 얼굴 같은 보리밭에 서서
밭고랑을 따라가며 보릴 밟는다
부스스 들떠오르는 팔다리마다
대지모신大地母神의 품에 꼭꼭 안겨
꿋꿋이 일어서라 꼭꼭 밟으면
한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털고
아지랑이 따스한 햇살을 받아
억센 팔다리를 하늘로 땅속으로 내뻗는다
칼날 같은 바람의 매서운 하늘
얼음장 아래서도 푸르른 얼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오랜 세월을
칠흑 같은 동지섣달 긴긴 어둠을
두견새 피울음으로 이겨온 밭고랑에서
못 먹어 부황든 보릴 밟는다
시퍼러이 일어서라 누런 보리밭
꼭꼭 밟는다 밟고 또 밟는다.

  - 시집『우리들의 말』(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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