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 말복

洪 海 里 2005. 11. 7. 15:01

 

말복末伏

홍해리(洪海里)
 

드디어
눈이 맑아지고
감청에서 암록으로 다시
기름기가 걷히고 남는
백색 여운
한 시대도
도장徒長했던 이파리들도
무덥고 기인 밤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고
균형이 잡혀
이마에 와 부딪히는
물빛 바람빛 산빛 구름빛 살빛도
그물에 걸리지 않고
눈으로 가슴으로
햇살이 날아와 꽂힌다
번쩍이는 칼날
똑바로 떠라 똑바로
어쩔 수 없이 여름은 지나가고
하얀 뼈다귀
골목마다 가득히 쌓인다
하늘에 먼저 가을이 와서
구름장마다 가벼운 날개가 돋혀
어두운 우리들의 눈알을 모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시집『우리들의 말』(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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