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 보길도

洪 海 里 2005. 11. 7. 15:08

 

보길도甫吉島

 

홍해리(洪海里)
 

적자산 기슭마다
난蘭은 지천으로 피고 있었다
고추를 쏘옥쏘옥 내미는
해묵은 클리토리스
봄이면 바람과 안개가 얼린다
안개를 뚫고 달리는 바람
바람을 싸고도는 안개자락
그 짓거리이듯
꽃을 피워대면서
적자산은 조용히 피고 있었다
동백나무 자르르 기름도는 이파리
달빛은 어리어리 회오리치고
산빛 물빛 얼려
초가지붕 위 웃음은 피나니
꽃대를 꺾어
풋물이 전신토록 볼가심하는
소학교 아이들
적자산 아래서 크고 있었다
장재섬 앞바다 고운 물결도
찰랑한 햇살을 이끌고
꿩이나 토끼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느니
꽃이고 이파리를 있는 대로 내맡기고
허연 허벅지까지도
쪼아대게 놔두고
황천강은 흐르고 있었다
이름없이 꽃은 피고
이름없이 꽃은 지면서
여름은 오고
소리소리 다하여 우는 산매미
강담을 넘어 바다로 바다로
온산을 밀어내는 민낯의 처녀들
고향 떠난 사내들도
늘 가슴에 피는
넉넉한 공허
스미나니 스미나니
은실같은 달빛의 거문고 가락.

 

  - 시집『우리들의 말』(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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