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 아스피린

洪 海 里 2005. 11. 7. 15:05

 

아스피린

 

홍해리(洪海里)
 

약국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에 스치는 하얀 구름
집에서 앓고 있는 어린 아이들
뜨거운 이마엔 열이 높고
하얗게 바랜 목구멍엔 가래가 끓는다
기침소리도 이젠 세어서
겨울바람처럼 칼칼 허공을 끊고 있다
참숯이 피고 있는 가슴 속
목구멍을 넘어간 알약 몇 알이
전신을 뒤채이면서 신열을 내고
사그라드는 불등걸이 돼가고 있다
핏발이 선 시력은 눈금이 높고
겨울 저녁은 깊어간다
달달달 난로 위 주전자의 물
우리의 한 평생도 이렇게 끓다
가고 마는 것인지
몰라
밤은 깊어가도 꿈은 오지 않는다.

 

  - 시집『우리들의 말』(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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