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근황 일지

근황일지   홍해리(洪海里)

돌아서 가는 사람들의 등에 꽂히는 살이 보인다 살을 날리는 바람소리도 보인다 골목의 온갖 풍경에 눈멀고 귀먹은 빛이 꽃밭에 와서도 눈이 뜨이지 않고 귀가 스스로 밝혀지지 않는다 풀 한 포기 다시 솟아오르고 꽃봉오리가 수없이 터져도 말은 혀 속 깊이 갈앉아 있다 저문 들판 늑대 우는 소리 저녁 연기 땅 가까이 깔리는 박꽃 지붕도 그리운 이 거리에 사자들의 눈빛이 빛난다 하늘을 날던 그들의 구천의 울음이 우리 등 뒤에 와서 단수명사인 나의 하루를 태질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풀들이 다섯 자의 누런 바람 앞에 섶을 헤치고 벌떡 눕는 어둠을 비난하고 당의정 문화와 간접화법의 인생을 완벽하고 분명한 자연 앞의 무력한 생명을 막강한 청동빛 목소리로 아프게 아프게 질타하고 있다 잠들어라 잠들어라 우짖는 저 기분 나쁜 까마귀 떼의 비상 그들의 검은 날개 사이 한 가닥 청음한 빛줄기의 빛남을 위하여 타는 목을 적시고 적시고 있다.     - 시집『우리들의 말』(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