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내린다 녀릿녀릿 스물스물 내리는 한 떼의 어둠 짙어가는 어둠의 골목골목으로 가면을 쓴 수 천의 사내들 탈에 묻힌 숱한 여자들 빌딩과 빌딩 사이 끝없이 끝없이 내리는 줄기찬 우유빛 밤빗소리 어두운 대낮과 환한 밤을 이으며 춤추는 허무의 밤빗소리 등 뒤로 매달리는 뿌연 시간의 찌꺼기를 털어내며 털어내며 흔들리는 싸늘한 창유리의 측면 어둠으로 빛나는 더욱 빛나는 창백하게 바랜 밤의 파편들 물 위에 떠 올라 끝없이 밀려가고 있는 바람의 행렬 파도의 꿈은 깨어지고 잠시도 잠들 날이 없는 바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별들의 흔적없는 이별과 이미 닫혀버린 문밖의 서두르는 구두발자국 가슴마다 출렁이는 어두운 물결 사이 수 천의 섬이 둥둥 떠다니고 향그런 풀꽃들이 피어 손짓하지만 솟았다 사라지는 낯선 섬들 비만증을 다스리는 당당한 허세가 텅 비어 있는 있음 위에서 아름다움을 위하여 스냅사진같은 정사를 위하여 잔인한 시간의 영원을 위하여 끝없이 두드리는 북소리 소리 깨어진 달과 부러진 달빛으로 쌓아올리는 물의 역사 뭉개버리는 불의 반역 하릴없이 낙하하는 꽃이파리들 부러진 날개의 나비 떼 벌 떼 아스팔트 위에 짓이겨진 순결한 처녀림의 허벅지 50m 도로의 소란한 불빛과 함께 질주하는 빌딩과 어둠의 그림자 으스러진 풀소리가 몇 다발씩 시멘트와 철근 사이에서 깨어나고 강 건너 달려오는 기형의 씨앗들 언뜻 틔어오는 새벽녘 하늘빛 강물소리를 일깨우는 바르르 바르르 떠는 부리 상한 새 목이 젖어 하얗게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