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무교동武橋洞』1976

<시> 무교동 5

洪 海 里 2005. 11. 7. 16:09

 

무교동 · 5

 

홍해리(洪海里)
 

장미꽃은 어디서 피고 있는가
푸른 하늘 은하수는 어디 있는가
밤이 깊으면 꿈은 어디 있는가
죽어버렸다 죽어버렸어 하고 우는
전신이 젖어 있는 서울여자여
불속에 타고 있는 사내들이여
뿌연 건물들 사이 기진한 낮과 밤
눈과 귀와 속살이 앓고 있다
한밤에 돌아오면 눈을 닦는다
귀를 씻고 물속에 담근 발을 닦고
전신을 씻고 닦아도 씻겨지지 않는다
물의 집 불의 집의 내밀한 헛간
고통과 꽃다발과 노기와 무력이 얽힌
50 :10, 40 :20, 30 :30의 무심한 저 달
동굴에서 지하에서 층계 위에서
황혼을 자정을 새벽을 그리고 대낮을
늪을 언덕을 산과 숲과 계곡을
기쁨과 슬픔을 유리잔으로 계산하는
쓸쓸한 가슴과 심장은 어디 가 있는가
서울의 소란스런 자궁의 암흑의 미로로
한강이 달려가고 인수봉이 솟아오른다
사내들과 여자들이 내닫는 곳마다
안개가 내리고 비가 내린다
거리마다 가득차던 투명한 웃음소리
삼사경이 지나면 문이 열린다
신음과 새벽바람이 일어서고 있다
불속을 내달리던 사내와 여자가
죽음의 나라 꿈의 나라를 핥고 있다
피의 바다를 건너 햇살이 한 개 깨어난다.

 

- 시집『武橋洞』(1976)

 

 

'시집『무교동武橋洞』197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무교동 7  (0) 2005.11.07
<시> 무교동 6  (0) 2005.11.07
<시> 무교동 4  (0) 2005.11.07
<시> 무교동 3  (0) 2005.11.07
<시> 무교동 2  (0) 200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