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무교동武橋洞』1976

<시> 무교동 6

洪 海 里 2005. 11. 7. 16:11

 

무교동 · 6

 

홍해리(洪海里)
 

 하루의 해일에 밀린 사내들이 지쳐 시든 꽃밭으로 흘러들 때 갈길은 멀고 행선은 더뎌도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흐느낌으로 가득한 도시 허무하고 허무한 도시여 비어 있는 신부들은 그냥 비워두고 나팔꽃은 피고 나팔꽃은 벙글다 진다 뒤채이는 저문 골목의 썩은 살과 백골들의 웃음소리 물에 둥둥 뜨는 허이연 몸뚱어리 벙벙한 뱃구레 털북숭이 복숭아같은 죽은 여자의 이름을 우린 모른다 젖어 있는 소녀들의 애환의 불꽃소리를 우린 듣지 못한다 그 사내들의 기적소리를 우린 따르지 못한다 그 소리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깊은 지를 우린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화무십일홍들아 영원한 꿈인 그대들아 너희의 육체가 영혼의 발바닥을 핥고 있어도 너의 발가락이 너의 발의 꿈을 꾸지 못한다 허공대천에 타오르는 오색찬란한 불덩이를 사랑하라 사랑하라 눈물에 젖은 사내가 불타는 여자를 적셔도 여자는 젖지 않는다 드디어 모든 것의 형체가 없어지고 소리가 없어지고 없는 것이 없는 것이 되어도 죽어 있는 시계가 스스로 살아나지 못한다 닫힌 어둠을 비추이지 못하는 인공의 달처럼 공중에 뽑혀진 잡초의 허연 뿌리가 뻗어나지 못하듯이 검은 연탄은 연탄이다.

 정처없이 떠도는 우리의 영혼이 응큼한 심장의 붉은 피를 내보이고 있다 갱 속에서 기어나온 사내들의 풀어진 사지가 허물어지고 무너지고 쓰러지고 침닉한다 늪 속으로 늪 속으로 빠져드는 바람 돌 별 대리석같은 지혜의 빛남도 보석처럼 당당한 여자의 빛남도 잠자리 날개같은 가을 하늘이다.

 물이 되어 물을 버리고 불이 되어 불을 버리고 한알의 모래알 속에서 고뇌의 불은 위대하게 타오르고 불기둥을 든 자들의 축복은 천공무한이다 소금기 가신 가벼운 사내들의 무거운 철학으로 텅빈 도로가 둥둥 떠가고 밤 바다 흰 머리칼을 날리고 서 있다 곧은 길이 사라지고 굽은 길이 나타난다 몇 자 앞이 보이지 않는 길로 향방 모를 바람이 달려가고 있다 갈길은 멀고요 행선은 더뎌도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다.

 

- 시집『武橋洞』(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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