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시> 포기 연습

洪 海 里 2005. 11. 10. 03:10
포기연습
홍해리(洪海里)
 

한양대학 부속병원
905호실의 하얀 공간.

다 거두어 들인 들판
비끼어가는 가을햇살처럼
조금은 쓸쓸하고
담담하게
내가 둥둥 떠 있다.

녹색 수술복
금식 팻말.

하나씩 하나씩 비워내고
마지막 하나까지 비운 다음
눈 감고 실려가는 수술실은
머언 먼 우주의 별.

마침내
내가 나를 만날 때
여러 이름들이 떠올랐다
허공이 망막에 가득하고
어둠 속에 점이 한 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왔다
얼만가 세월이 흘러가고
회복실에서
내가 나를 다시 만났을 때
혓바닥까지도 숯검정이 되어
아무리 고갤 흔들어도 응답이 없었다.

회복실 서창에 타던
노을의 불바다
두 눈을 싸맨 나
방향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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