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시> 남은 자리

洪 海 里 2005. 11. 11. 05:13
남은 자리
홍해리(洪海里)
 

죽은 이는 말없이 떠나버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만 뒤에 남아서
먼저 간 이를 이야기하며
화톳불 주위에 둘러앉는다
지글지글 불똥을 튀며 통나무는 타오르고
홧홧홧 어둠을 태우며 타오르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기 마련
죽은 이만 불쌍하지 안됐어 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소리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자식들의 울음소리 들릴 길 없고
되돌아 오지 못하는 이 먼먼 길
막걸리 사발이 몇 순배 돌고,
이웃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나면
한 사람이 남긴 자리가 너무 넓구나
한세상 사는 일이 꽃잎인지 풀잎인지
아니면 흘러가는 강물인지 바람소린지
남은 자리 메꾸면서 살아나갈 일
통나무 화톳불은 더욱 세게 타오른다.
(시문학. 1984.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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