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시> 고기잡기

洪 海 里 2005. 11. 11. 05:14
고기잡기
홍해리(洪海里)
 

한나절 물을 퍼내고 또 퍼낸다
허기지도록 퍼내야 보이는 하늘
하늘이 보여야 드러나는 바닥
약아빠진 놈들은 다 도망치고
미련하고 못난 놈들만 남아
진흙 속에 머릴 처박고 숨어버린다
송사리 미꾸라지 붕어 몇 마리
밤낮없이 잡히는 놈은 눈먼 등신들
둠벙마다 하늘을 봐도 마찬가지다
할일없는 겨울날 들에 나가서
꽝꽝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얼어드는 발가락을 진흙 속에 묻으며
아무리 물을 퍼도 밑바닥엔 허무뿐이다
겨울날 물푸기는 허무의 확인
밑바닥에 뻣뻣이 굳어 있는 미꾸라지
우련한 놈들만 어쩌다 남아서
차가운 하늘에 뱃구레를 들어내며
잘나고 약아빠진 놈들을 욕해 봐도
얼어붙은 하늘은 움쩍도 하지 않는다
꽝꽝 얼어붙어 움쩍도 하지 않는다.
(시문학. 1984.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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