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시> 불밝히기

洪 海 里 2005. 11. 11. 05:17
불밝히기
홍해리(洪海里)
 

십자가를 피뢰침처럼
하늘 가까이 가까이 세워놓고
대낮에도 환하도록 불을 밝힌다
길잃은 어린 양들을 위하여
눈에 쉽게 띄이도록 불을 밝힌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불러
편히 쉬며 배불리도록
중국집 2층마다 간판을 달고
반짝반짝 네온싸인 불을 밝힌다
불쌍하고 죄지은 자들을 위하여
숨어사는 무거운 마음을 위하여
길 잃지 않은 아흔 아홉을 위하여
먹을 것이 없어 귀까지 먹은 이들을 위하여
확성기 차임벨은 골목골목마다
천상의 메시지를 아침저녁 뿌려대고
불밝히고 종을 울리며 살을 올리는
저 거대한 비계의 피둥피둥함이여
가난한 사람들 더욱 가난토록
불쌍한 사람들 더욱 불쌍토록
십자가를 하늘 가까이 세워놓고
대낮에도 환하도록 불을 밝힌다.
(시문학. 1984.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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