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시> 새나 되기

洪 海 里 2005. 11. 12. 10:33





새나 되기


洪 海 里

 

청계천 새집들을 기웃거리다 지쳐 돌아온 저녁이면 옷깃에서도 온통 새소리가 묻어났다 자유의 비상을 갈망하는 피맺힌 울음소리 젖어 있다 굳어버린 체념의 날갯짓이 떨어진 꽃잎처럼 잠들어 꿈속에까지 들려오는 새소리는 노래였다 울음소리였다 새장 속의 한 마리 새 회색빛 도시의 하늘이라도 나는 새 얼어붙은 겨울 강물 속으로 속으로 자맥질하는 새 ------가 되고 싶다. 

새장 속에 스스로 갇혀 사는 새나 되기 십자매 금화조 호금조 금정조 상사조 문조 구관조 앵무 카나리아나 되기
푸른 하늘 쏘듯 치솟다 떨어져 내리는 새 눈가루 날리는 숲 속을 나는 이름 모를 새나 되기
나무 사이 숨어 소리만 살아 있는 꾀꼬리나 뻐꾸기 박수치며 날아오르는 비둘기나 아침 까치 시골집 초가지붕 굴뚝 근처의 쑥새 굴뚝새 장박새 어치나 딱새 저녁하늘 밤하늘 낮게 낮게 날아가는 청둥오리나 쇠기러기나 되기.

눈 덮인 동백나무 기름기 잘잘 흐르는 잎새 사이 삐이잇 삐이잇 쮸우잇 쮸우잇 찌이찌이 찌이찌이 쮸쮸 찌이찌이 찌이 우는 동박새 보리밭 황금 물결 하늘로 하늘 속으로 까무러치듯 솟구쳐 오르면 구름 위 어디선가  삐루룩 찌이찌이 쬬루 찌이쬬루 찌이 쬬루 찌이 쬬루룩 찌이찌이 배배배배 까록까록 까르까르 비비비비 찌익 우는 중종다리 삐이이요 삐이이요 삐이루루루루루 삐이이요 우는 직박구리 삐리삐링 삐리삐링 할미새 삐이삐 뽀이뽀이 우는 딱새 갸아아 갸아아 우는 어치나 되기.

꿩이나 메추라기 크낙새나 딱따구리 수리나 매 황새나 백로 학이나 뜸부기 따오기나 동고비 되새나 무당새 까마귀나 밀화부리 참새나 물총새 아니면 오목눈이 넓은이마홍때까치나 흰눈썹긴발톱할미새여!

                                             - 월간《시문학》(1984. 4월호)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동동  (0) 2005.11.12
<시> 백결가  (0) 2005.11.12
<시> 천상천하  (0) 2005.11.12
<시> 딸을 위하여  (0) 2005.11.12
<시> 아들을 위하여  (0) 200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