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시> 천상천하

洪 海 里 2005. 11. 12. 10:31
天上天下
홍해리(洪海里)
 

삼면이 바다로 싸인 한반도처럼
한쪽은 벽, 삼면이 유리창인 숙직실
밤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침길
눈발이 천지 가득 휘날리었다
종점행 차내엔 오돌오돌 떠는 승객들
간밤엔 기온이 영하 20도로 떨어지고
온 세상이 적막 속에 하릴없이 잠들었다
방바닥은 절절절 끓어오르고
외풍은 세어서 코끝까지 얼어붙었다
뒤채이는 잠 속에서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새벽녘엔 머릿속이 텅 빈 납덩이였다
차창마다 전신을 부딪는 눈송이 송이
어깨에 내린 눈발을 털어내리며
중년사내들이 중얼대며 차에 오르고
황황히 사라지는 여자들의 뒷모습
골목길로 눈바람이 뒤따라 간다
정거장마다 서기도 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하며
종점에 다다를 즈음
허허 비인 차내엔 언제나처럼 혼자였다
밖엔 여전히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백결가  (0) 2005.11.12
<시> 새나 되기  (0) 2005.11.12
<시> 딸을 위하여  (0) 2005.11.12
<시> 아들을 위하여  (0) 2005.11.12
<시> 난아 난아  (0) 2005.11.12